▲ 마정미 한남대 정치언론국제학과 교수 |
루신(魯迅)의 소설 <아Q정전(阿Q正傳)>은 신해혁명 전후에 미장이라는 농촌에서 날품팔이로 살아가는 아큐라는 최하층 농민의 일대기다. 그는 이름도 불분명하고 서른이 넘도록 집도 여자도 없다. 수없이 많은 굴욕을 당하고 살지만 그것을 직시하지 못하고 도리어 이른바 정신승리법이라는 특유의 자기 위안 방법으로 ‘승리’를 구가하며 산다. 그렇지만 가끔 근방 암자에 사는 젊은 비구니와 같은 약자에게 자신이 강자에게 받은 굴욕과 분노를 전가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급기야 아큐는 자기를 핍박하던 사람들이 혁명을 무서워하는 것을 보고 혁명당에 가담한 것처럼 행세하다가 누명을 쓰고 총살당해 죽는다.
냉혹할 정도로 약한 자를 억압하다가도 강한 자가 나타나면 무조건 굴복하는 아큐의 비굴한 노예근성이 바로 작가 루신이 간파한 중국인 특유의 자존심과 사대성의 정체였던 것이다. 부질없이 남의 뒤꽁무니나 쫓아다니며 야단법석 수선을 피울 뿐, 자기 자신의 신념이나 실행력이 없고, 자기 일은 어느 것 하나 철저히 해 내지 못하면서도 아무데나 끼어들어 잘난 체하는 아큐를 통해 루신은 중국 국민의 무기력과 무능력을 들추어 보이고, 헛된 자존심과 무조건 남을 추종하는 사대주의에서 벗어날 것을 촉구했다.
외세에 노상 패하고서도 '정신적 승리'를 주장하는 중국인의 자기기만, 놀라운 망각, 비겁 등을 신랄하게 비판한 이 소설은 당대 중국인의 이야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류보편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더구나 이러한 아큐는 과거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아큐의 후손들은 이 시대에도 도처에 있다. <중국의 붉은 별>의 작가로 유명한 에드거 스노는 루신과의 대화에서 “선생께서는 아큐가 현재도 이전과 같이 여전히 많다고 말하지는 않겠죠?” 라는 질문을 했다고 한다. 루신의 답변은 이렇다. “상황이 이전보다 더욱 나쁩니다. 그들은 현재 국가를 관리하고 있어요.”
이명박 정부의 한미, 한일동맹에 대한 짝사랑은 보기 좋게 뒤통수를 맞았다. 마지막 히든 카드였던 쇠고기 협상카드를 국민과 국회의 동의도 받지 않은 채 서둘러 선물로 갖다 바쳐 내홍을 겪더니 정작 미국에게 무시당하고, 미`일정상들과 만나 파안대소하고 돌아와서는 일본의 독도영유권 표기라는 카드를 통보받았다. 스스로 주체적이지 않은 외교가 승부를 거둘 리 만무하다. 안팎의 경제상황에 대한 무지와 무시, 외교정책 부재로 우리 정치경제와 외교안보는 패닉 상태에 빠졌고 이제는 진보진영뿐 아니라 보수진영에서조차 국정운영이 낙제점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결국 우리는 또 하나의 아큐를 대통령과 새 정부에게서 보고 있는 셈이다. 쇠고기 협상으로 인한 검역주권 포기, 일본 독도영유권 도발로 인한 영토주권 포기, 대내외 악재가 겹친 세계경제체제 속에서 시대착오적인 고환율정책까지, 현 정부의 행태는 외세에 밀리고 안에서는 막무가내인 아큐에 가깝다. 경제정책 실패의 책임을 물어 상대적 약자인 차관을 경질시킨 것도 아큐스럽다. 정부의 아큐스러움은 전 국민의 국익과 민족의 미래, 역사에 치명적인 폐해를 끼치는 된다는 점에서 대단히 위협적이다.
언제까지 사대주의적 동맹우호의식에 사로잡혀 굴욕외교를 할 셈인가. 우리의 자주적인 외교를 위해서 정부는 스스로 자존을 지켜야 한다. 국민들은 제발 이 정부가 10년 동안의 문화지체와 지적인 지체를 극복하고 하루빨리 시대에 적응하라는 주문을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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