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광연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장 |
필자는 이 때 CT (문화기술)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디지털 기술을 전통적인 산업에 접목함으로써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동시에 과학기술과 문화예술의 교류, 그리고 더 나아가서 융합을 통해 두 분야 모두의 동반발전을 꾀하자는 것이었다.
지금 CT는 게임, 영화, 애니메이션 등 문화콘텐츠를 주로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필자의 생각에 이는 단편적인 접근이고 실제 필자가 생각했던 과학기술과 문화예술의 융합을 통한 시너지 발생과 도시 전반적인 역동성, 창조성 증대에는 한참 못미치는 접근 방식이라고 보여진다.
최근 대전시가 창조도시로 새롭게 방향을 정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대한민국의 관문인 인천국제공항에도 커다란 광고판에 `창조도시 대전`이란 문구가 새겨져 있다.
대전시가 창조도시를 표방한 이 때, 과학기술과 문화예술의 교류와 접목과 융합을 통한 사회 전 분야의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CT의 당초 취지를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 최적의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창조도시의 반대되는 도시 형태는 무엇일까? 소비도시, 역사도시, 전통도시, 생산도시, 제조도시, 농업도시, 행정도시 등일 것이다. 그러니까 창조도시는 전통에만 얽매이지 않고 (대전에는 이렇다할 만한 역사와 전통은 없다.), 기존의 농수산업이나 제조산업에만 의존하지 않으며 (대전에는 타 도시에 비해 대표적인 농업도, 제조산업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안정적이나 고리타분한 행정중심도 아니고 (돈과 권력은 어차피 서울에 있다), 소비적이지 않은 ‘창조적 소비도시`일 것이다.
창조를 이루는 요소는 과학기술, 문화, 예술, 교육, 산업의 5개 분야와 젊음, 역동성, 진취성, 개방성, 모험성의 5개 성격이다. 그러니까 위의 5개 분야에서 위의 5개 성격이 발휘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면 저절로 창의적인 사람들이 대전에 몰려오고, 타 지역에서는 생각할 수 없었던 새로운 사업과 산업이 생겨나고, 대전에서 배출한 인재가 대전에서 활동하고, 새로운 관광명소가 생겨나 전국에서, 해외에서 사람들이 몰려올 것이다.
창조는 당연히 새로워야 한다. 그러나 반드시 새로운 단지를 만들거나 새로운 건물을 짓거나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것을 새롭게 해석하는 것도 창조이고, 새롭게 사용하는 것도 창조이고 새롭게 즐기는 것도 창조이다.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에서는 폐교를 활용해서 청소년들에게 디지털문화를 체험하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박물관과 협력해서 선사시대의 상황을 글이나 그림으로만이 아니라 가상현실로 체험하는 전시물을 기획하고 있다. 공연예술이 디지털 기술을 만나 새로운 예술 형태로 진화할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다. 지금은 사라진 국내외 문화재를 디지털로 복원, 영상으로 체험하는 사례를 수 차례 제작한 바 있고 현재는 불타고 없어진 숭례문을 디지털로 복원하고 있다. 반지의 제왕에서나 볼 수 있는 특수효과 기술도 자체적으로 개발해서 보유하고 있다.
오는 가을에는 국립현대미술관과 공동으로, 카이스트 캠퍼스 전체를 전시장으로 사용하는 현대미술전을 기획하고 있다. 그동안 단절되었던 과학기술의 현장과 대전시민의 삶의 현장을 여는 것 만으로도 창조는 시작이 되는 것이고 창조의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창조는 과학자, 예술가, 기업가 등 소수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들이 창조를 선도할 수 있지만 창조를 완성할 수는 없다. 창조는 우리 모두의 참여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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