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 밖]얼리버드의 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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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 밖]얼리버드의 비애

  • 승인 2008-07-10 00:00
  • 신문게재 2008-07-11 21면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남보다 일찍 일어나 ‘벌레`를 잡을 뿐 아니라 더 높이 날고 멀리 봐야 진정한 ‘얼리버드(early bird)`라 할 수 있다.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하는 것도 중요하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일찍 잡아먹힌다. 이 농담이 실현되면 안 되니까.


임금은 하루 다섯 번 먹었다. 아침저녁 정식 수라, 이른 아침에 주로 미음으로 먹는 초조반상, 한낮의 낮것상, 밤의 야참. 이때 낮것상은 점만 살짝 찍는 점심(點心)이다.

궁중 스케줄에 충실하다 보면 나랏님이지만 많아야 대여섯 시간 취침이 시간이 고작이었다. 이른 조회에 이어 경연을 끝내고 아침을 먹으려면 임금이고 만조백관이고 얼리버드를 자청해야 한다. 그 풍경이 요새 청와대 풍경과 엇비슷하다면 좋을 듯하다.

그제(9일) 선진 8개국(G8) 확대정상회의에서 자신이 “얼리버드(새벽형 인간) 평을 듣는다”고 자랑한 우리 대통령은 어떤지, 아랫사람의 일과로 추적해 본다.

우선 셀프커피부터. 아랫사람들은 누가 타주는 것 시원히 마시느니보다 이것이 거북하다. 셀프커피도 어쩔 수 없이 정치행위다. 임금의 12첩 반상 수라상은 더욱 정치의 연속으로 정치적 정향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재임 시절 김영삼 전 대통령이 매일 먹던 청와대 칼국수에 담긴 정치적 의미를 되풀이 음미하면 공통분모를 발견할 것이다.

옛날 문무백관들은 임금이 수라를 들기 전에 입궐 못하면 불호령이 떨어졌다. 궁에서 자란 임금이나 이 대통령처럼 단련된 종달새족이면 몰라도 아침잠 많은 올빼미족에겐 그건 고역이다. 하여 궁궐 지각은 왕과 대립했던 신하를 다루는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했다.

아무리 주인에 봉사하는 머슴의 사명감이 충만하더라도 지각 안 하기란 쉬운 일 아니다. 8시 수석비서관 회의를 하자면 직원들은 6시 30분 이전에 나오다 보니 새벽별 보기가 따로 없다. 대통령 업무보고를 7시 30분에 하려면 고위급은 6시에, 담당자는 5시에 나와야 한다. 청와대 얼리버드들은 집이 서울 외곽이나 경기도 쪽이면 꼭두새벽인 4시에는 기상해야 할 것이다.

자고로 부지런한 지도자에게 지각생은 늘 밉보임의 대상. 영조실록에 수라를 들기 전을 기준으로 아직 안 나온 신하 중 가까운 근기(近畿)는 삭출(削黜.벼슬 빼앗고 내쫓음)하고 멀리 사는 기외(畿外)는 파직을 명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수라상에 살벌한 정치적 음모가 숨어 있었다. 사대문 안, 아예 청와대가 있는 종로에 집을 구하기도 하는 것도 고금이 같다.

지금쯤 대통령님, 잠 좀 주무십시오, 하고 건의하는 참모가 나올 법하다. ‘이명박 과장님`도 괜한 별명이 아니다. 780만개가 넘은 전국 전봇대 하나하나를 제갈량처럼 시시콜콜 헤아리려 들면 본인이 먼저 피곤하다. 아랫사람에게 맡길 건 맡겨야(떡은 떡집에!) 좋다. 논어는 말한다. “제사그릇을 챙기는 따위의 일은 하급 관리가 도맡을 일이다.”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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