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은 게다가 고개를 약간 떨궈 오해가 섞여 든다. ‘큰 칼 옆에 차고…` 시조가 있지만, 한 손으로는 힘 부칠 무지하게 큰 칼 또한 시빗거리를 낳는다. 또 전사한 장군은 오른손으로 칼집을 잡는다거나 친일파의 작품이라 그렇다는 구설에 휘말렸다.
계백 장군 동상도 이순신 장군의 그것과 논점이 같은 계통이다. 어제(3일) 본지 7면 ‘계백 장군 동상 미스터리` 기사를 참조하면 부여군청 앞에 백제의, 부여의 상징처럼 버티고 섰던 동상이 갑자기 바꿔치기 된 앞뒤 내막도 기구하거니와 동상 속 장군이 왼손으로 말고삐를 잡은 채 오른손을 번쩍 들어 의혹을 부풀린다.
동영상(☞ joongdo.co.kr)을 봐도 알겠지만, 이따금 부여군청 앞 로터리를 지나면서 신경 거슬렸던 것은 왼쪽 다리를 든 계백 장군 애마다. 원칙은 몸 성한 장군의 말은 땅을 딛고, 전사 장군을 태운 말은 앞발 모두 쳐들어야 한다. (앞발 들면 살아서 승리, 땅 디디면 전사라는 일설이 있긴 하다.) 이런 이치로 풀어 한 발을 치켜든 계백 장군의 말은 부상당한 장군이 탔다는 기호(記號)인 것이다.
부여 계백 장군 동상과 세종로 충무공 동상에 붙은 시비는 고증 불충실에서 기인했을 수도, 제작상 과오일 수도, 아니면 일부러 의도했을 수도 있다. 이제 보니 다른 공통점이 있다. 부여의 동상이 무슨 연유에서인지 이전됐고, 세종로 동상은 도심 재창조의 일환으로 광화문 열린 마당 이전이 검토된 지가 얼마 전이다. 제대로 만들어 지금의 자리에 모시는 것도 한 방법이겠다.
민족을 수호한 용장들의 진면목을 무시하고 꼬마들 장난감처럼 아무렇게나 만든다면 본의 아니게 그분들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지식의 가치가 네티즌 투표로 결판나고, 옳고 그름이 아닌 좋고 싫음이 그 기준이 되는 시류(時流)라 해도, 항복한 이순신 장군과 부상당한 계백 장군이라니! 얼토당토않다. 언제 부여나 서울 갈 일 있거든 장군님들 동상을 주의 깊게 살펴보시라.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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