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자 정부출연 연구원의 감사책임자, 명리(命理)연구가 등 다소 어울리지 않는 직함들이 김백겸(56) 대전충남 민예총 작가회의 지회장의 이력이다.
변의수 시인은 그를 ‘심해(深海)의 우주율을 자아내는 사유의 누에고치’라고 표현했다.
“우리네 현실에서 고치를 뚫고 나비로 날아오르기는 실로 어렵습니다. 고치를 깨뜨리고 나비가 되기보다는 대부분 고치 상태로 죽어가고 말지요.”
경영학을 전공한 김 시인은 대학시절 경영학 서적보다는 시와 미학, 철학책을 읽으며 문학을 꿈꾸었다.
“외아들로서 집안의 생계를 책임져야하는 현실에서 예술이나 철학을 선택하기는 쉽지 않았다”고 회고한 김 시인은 원자력연구소에 취직을 하며 경제문제가 해결되자 문학으로의 항해를 시작해 198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함으로써 시인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비를 주제로 한 서정별곡’, ‘가슴에 앉힌 산하나’, ‘북소리’, ‘비밀 방’, ‘비밀정원’ 등 5권의 시집을 내며 우주와 내면에 대한 깨달음을 시세계를 펼쳐 온 그는 “대학에서 문예창작 강의를 하며 더 일찍 문학을 시작하고 더 많은 책을 읽었다면 학생들에게 훨씬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지 않을까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이렇듯 시와 문학에 대한 끝없는 욕망으로 매일 아침 명상과 시 쓰기를 거르지 않는 그이지만 “시적 사유는 인간의 근본으로 시는 비단 좋은 환경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 채워지지 않는 현실과 앎에 대한 끊임없는 욕망 등 결핍의 상태에서 그 힘이 더 강하다”고 강조한다.
이런 그가 세 번째 시집 ‘북소리’에 실린 ‘빈집의 지붕’에서 “나는 연필을 던져버렸네/(중략)이름 앞에 시인이란 관사가 붙던 날 이후/내 시는 기호와 그림으로 액자 속에 들어가/사람들이 심심할 때 둘러보는 동물원의 짐승이 되었네”라며 절필을 선언한바 있다.
시의 무용론에 빠진 10년간 주역과 명리학에 천착했던 그는 우리 인생은 드러나지 않는 질서(天命)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우주와 세상에 숨겨진 비밀스런 의미를 시라는 언어로 풀어내기 시작했다.
“‘나는 무엇인가?’ ‘세계는 무엇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고뇌와 사색의 여정”이라고 당시를 회고한 그는 “음양오행을 공부하며 내 삶의 천명은 어떤 것이며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마음의 고통을 줄이는 지혜를 터득한 시간들이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우주와 인생의 깊은 사유의 바다에서 누에고치를 뚫고 한 마리 나비로 힘차게 날아오른 그는 “인간은 누구나 시심(詩心)을 가진 사유 이성으로 다양한 삶의 체험 속에서 우러나는 시 쓰기를 통해 고치를 깨뜨리고 나비가 되어보라”고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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