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가슴 아리게 한 건 박재홍의 ‘사인행(四人行)` 발문이다. ‘두 목발에 의지하여 어두컴컴한 서실에 도착하여 열심히 붓질을 했던 때로 기억된다` 했다. 박 시인과의 첫 만남도 편집국을 질러 논설위원실로 오는 네(四) 발자국을 통해서다. 오감이 발달한 편인데다 백부께서 목발을 짚으셨기에 내 귀의 감지 속도는 남다르다.
은퇴한 언론 선배가 물려준 72년판 이어령 전작집을 펼치니 “하던 짓도 멍석 펴면 하지 않는다는 이 민족을 다스릴 자는 팽이채를 든 독재적인 지도자는 아니다”라는 본문을 책날개에 뽑아놓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역사를 바꾸는 리더십`(제임스 맥그리거 번스) 추천사를 썼다. ‘모두가 절망에 빠져 있을 때, 비전을 보고 서로에게 힘을 실어주는 리더십이 해결책이라는 이야기….` 어수선한 작금 상황에 맞지 싶다.
추천사라면 16부작 미니시리즈로 부족할 사람이 필자다. 김우영의 ‘우리말 나들이` 뒤표지에도 내 이름으로 추천사가 박혀 있다. ‘달차근한 맛과 멋으로 버무린 이 약(藥=책)을 모든 사람 손길 닿는 곳에 두어야 한다`고 써줬더니 작가는 원고료로 시계를 대신했다. 시계는 동네 미화원 아저씨가 차고 다닌다.
사실이지 띠지나 추천서는 과신할 게 못 된다. 장점만 부각하는 추천사를 직접 의뢰한 경험이 있다. ‘천하의 독자들`이 두루 읽으라는 추천사가 돌아왔다. 졸저 어떤 책날개의 ‘고감도의 감성과 정제된 지성으로 교직(交織)` 운운의 자화자찬 카피도 낯간지럽다. 무당이 신에 씌운 소리쯤, 청산 예쁜 여우에 딱 한 번 홀린 셈 친다.
다음번엔 빚보증 같지 않은 추천사와 저작물을 당당히 담을 계획이다. ‘한번 접하면 평생 잊지 못하게 될, 석양녘 창가에 서면 당신의 가슴을 사무치게 파고들 그 무언가`(‘삿뽀로 여인숙` 추천사)처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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