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 밖]이사, 버리고 떠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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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 밖]이사, 버리고 떠나기

  • 승인 2008-06-26 00:00
  • 신문게재 2008-06-27 21면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오류동 175-3번지. 중도일보 새 사옥으로 오늘 이전하면서 거의 무소유라는 생각으로 이삿짐을 꾸렸다. “제라늄 화분, 지붕에 비둘기가 있는 분홍 벽돌집”보다 “몇억원짜리 집” 해야 이해가 빠른 어린 왕자의 어른들. 그런 식 표현으로 1800만원어치는 버렸다. 버릴 책과 이별하며 표지 글과 추천사를 일일이 훑어 읽었다. 책보다 아까운 추천사가 의외로 많았다.


특히 지식 습득 과정이 종횡무진에 가까운 내가 깊이 공감했던 ‘공부의 즐거움`은 카를로 콜로디의 동화로 문을 연다. ‘피노키오 벗어나기`라는 추천사다. “나를 학교에 보낼 거고, 좋아서든 억지로든 공부해야 할 거야.” 끔찍이도 공부를 싫어하는 꼭두각시 인형 피노키오지만 ‘열공` 끝에 사람이 된다는 스토리다.

무엇보다 가슴 아리게 한 건 박재홍의 ‘사인행(四人行)` 발문이다. ‘두 목발에 의지하여 어두컴컴한 서실에 도착하여 열심히 붓질을 했던 때로 기억된다` 했다. 박 시인과의 첫 만남도 편집국을 질러 논설위원실로 오는 네(四) 발자국을 통해서다. 오감이 발달한 편인데다 백부께서 목발을 짚으셨기에 내 귀의 감지 속도는 남다르다.

은퇴한 언론 선배가 물려준 72년판 이어령 전작집을 펼치니 “하던 짓도 멍석 펴면 하지 않는다는 이 민족을 다스릴 자는 팽이채를 든 독재적인 지도자는 아니다”라는 본문을 책날개에 뽑아놓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역사를 바꾸는 리더십`(제임스 맥그리거 번스) 추천사를 썼다. ‘모두가 절망에 빠져 있을 때, 비전을 보고 서로에게 힘을 실어주는 리더십이 해결책이라는 이야기….` 어수선한 작금 상황에 맞지 싶다.

중도일보 독자위원인 도완석의 ‘무대와 인생` 후미에서는 탤런트 김석훈이 ‘참 대단한 분이시다` 외에 할말 없다며 극구 칭찬이다. 그는 “선생님처럼 열두 가지 재능이 있는 분들은 없을 것 같다”고도 했다. 김상숙 시집 ‘강물 속에 그늘이 있다` 자서(自序)도 마음을 붙잡는다. ‘비록 상처가 남을지라도 불꽃처럼 태워보고 싶다.` 내가 아는 그녀 모습이 절규처럼 투영된 이 책도 버릴 수 없다.

추천사라면 16부작 미니시리즈로 부족할 사람이 필자다. 김우영의 ‘우리말 나들이` 뒤표지에도 내 이름으로 추천사가 박혀 있다. ‘달차근한 맛과 멋으로 버무린 이 약(藥=책)을 모든 사람 손길 닿는 곳에 두어야 한다`고 써줬더니 작가는 원고료로 시계를 대신했다. 시계는 동네 미화원 아저씨가 차고 다닌다.

사실이지 띠지나 추천서는 과신할 게 못 된다. 장점만 부각하는 추천사를 직접 의뢰한 경험이 있다. ‘천하의 독자들`이 두루 읽으라는 추천사가 돌아왔다. 졸저 어떤 책날개의 ‘고감도의 감성과 정제된 지성으로 교직(交織)` 운운의 자화자찬 카피도 낯간지럽다. 무당이 신에 씌운 소리쯤, 청산 예쁜 여우에 딱 한 번 홀린 셈 친다.

다음번엔 빚보증 같지 않은 추천사와 저작물을 당당히 담을 계획이다. ‘한번 접하면 평생 잊지 못하게 될, 석양녘 창가에 서면 당신의 가슴을 사무치게 파고들 그 무언가`(‘삿뽀로 여인숙` 추천사)처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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