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전 한남대사회문화대학원장대전연극협회장 |
18세기 독일 근대연극은 당시 대외무역의 중심지였고 대양을 향해 열린 도시였던 함부르크에서 시작되었다. 도시의 상인들은 근면과 정직으로 쌓아올린 부를 활용하여 그들만의 문화를, 신분적 세습이나 종교적 권위에 의해 조성된 문화에 대척하는 땀이 서린 민주적인 문화를 정립하려했고 이를 위해 상인들이 돈을 모아 국민극장을 만들었다. 그때 이론적인 토대를 제공한 이가 유대인의 피를 물려받은 작가이며 비평가였던 레씽이었다. 그는 『현자(賢者) 나탄』이라는 작품을 통해 기독교와 이슬람 그리고 유태교의 종교적 편협성을 통렬히 비판한 인물이기도 했다.
대전의 과제 중의 하나가 중구 대흥동을 중심으로 한 문화거리 조성 사업이다. 70~80년대의 대전문화는 가톨릭 회관을 중심으로 한 그곳이 터전이었다. 도시 중심이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이곳은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지만, 그러나 여전히 풋풋한 중소도시 시절의 대전 냄새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이곳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
얼마 전 대전에 오사카 시에서 활동하는 ‘고쿠라쿠 뮤지컬 극단’이 찾아와 재미있는 세미 뮤지컬을 공연한 적이 있다. 인구 250만의 도시로 일본 제2 도시인 오사카에는 교포가 30만에 이르는 한류의 도시이기도 하다. 이 오사카는 남-북으로 나뉘어 독특한 색깔을 내고 있는데, 남부 오사카는 오랜 전통이 숨쉬는 지역으로, 여기에 도톰보리라는 일본 전통음식점 상가가 조성되어 있고, 이 상가 안에 <에비스 좌(座)>라는 극장이 있어 극단이 활동을 보장받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보여 준 공연은 이 상가에 사는 한 젊은 부부의 사랑싸움이었다. 다양한 노래와 춤, 개그 등으로 익숙하지 않은 일본 일상(日常)을 유머러스하게 전달해 주는 수작이었다. 문제는 작품 외에 극단이 상가와 맺고 있는 관계였다. 이들은 작품 안에서 오사카 상인의 근면과 원칙 그리고 그들의 상인 정신을 티 나지 않게 인간적으로 전달하고 있었다.
이들은 때때로 거리 연극을 펼쳐서 이 상가로 이목을 집중하게 하며 상가의 활동을 문화적으로 지원해주는 역할을 하고, 또 이 상가의 번영회는 이 극장을 보호하며 연극 전통도 살리고 상가의 품격을 유지하며 동시에 상행위도 활성화 하는 상생관계를 이 양자가 생산적으로 유지하고 있었다. 이들의 한국 공연은 이 번영회 회장의 지원으로 가능했다.
대흥동은 충분히 매력적인 공간이다. 이 공간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은 관의 힘만으로도, 문화예술인들의 힘만으로도 가능하지 않다. 거기에서 생업을 이어가는 상인계급의 발상의 전환이 그 출발점이다. 뭔가 독특한 상도가 드러나는 상가. 그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일본 공연 중에서 구두쇠로 소문난 한 노 여인이 말한다. “오사카 상인들은 죽은 돈과 살아있는 돈을 구별할 줄 알아. 절약하는 사람은 살아있는 돈을 쓸 줄 알지만, 구두쇠는 무조건 돈을 안 쓰지.” 대흥동의 상인정신이 그 거리를 살려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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