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광래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유전체의학연구센터 책임연구원 |
집안의 가훈이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였기 때문이다. 집사람에게 그런 쓸데없는 TV 드라마를 본다고 구박을 한 처지라 겉으로는 크게 웃지도 못하고 속으로만 웃었다. 이때 내가 1997년부터 2000년까지 미국 국립보건원(NIH)에서 박사 후 연구과정 생활을 하면서, 30대 한창 나이에 미국의 유명 관광지를 돌아 다녔던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땐 참 좋았었지! 아무런 생각없이 연구만 하고 주말에는 모든 시간을 가족과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니….` 하지만 지금 한국에서의 생활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한국에서는 일에 치여, 밤12시가 되어서야 겨우 집에 들어가게 되는 일이 허다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훌쩍 커버려 고3이 된 예쁜 딸이 미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던 때가 생각이 난다.
딸이 다니는 초등학교에 이런 저런 행사가 많아서, 아빠인 내가 애 엄마와 같이 학교를 많이 찾아가게 되었다. 딸의 참관수업을 지켜보면서 미국 초등학교의 교육시스템이 많이 부러웠었다. 첫번째는 수업이 발표를 통한 설득력을 키워주는데 주안점을 두었던 것이였고, 두번째는 다양하고 저렴하면서도 품질은 우수한 학교 주관의 과외 교육이였으며, 세번째는 언어교육에 관한 한 선생님들이 전부 다 원어민이였다는 것이였다.
강산이 한번 변한다는 10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니, 한국에서도 영어 몰입식 교육을 시작한다는 반가운 뉴스를 접하게 되었다. 하지만 곧 ‘아차! 그럼 그 많은 선생님들은 다 어디서 구하지?`하는 의구심이 바로 꼬리를 물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런 좋은 안도 원어민 교사를 준비할 실효성이 없다는 이유로 며칠만에 뉴스의 저편으로 조용히 사라지게 되었다.
내가 연구원에 입사한지도 벌써 20년이 넘었다. 하지만 연구가 좋아서 연구원을 고집했던 나로서도 내가 몸담고 있는 생명(연)이 KAIST와의 통합건으로 시끌벅적한 요즘같은 시국이 되면 마음 한편이 허전하게 된다. 이런 생각이 들면 부푼 가슴을 안고 대학에 첫 발을 디뎠던 27년전이 생각이 떠오른다. 1978년 제한효소를 최초로 발견한 3명의 사람에게 노벨의학상을 수상하면서, 이 당시 전세계는 유전공학 분야가 새로운 황금알을 낳을 수 있는 연구분야로 지목하기 시작하였다.
나도 이런 분위기에 휩쓸려 유전공학을 연구할 수 있는 분야로 지원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당시의 국내 연구환경은 국제적인 현실과 너무나 달랐다. 지금 내가 처한 환경을 돌아다보면, 한국의 생명공학 분야가 그때에 비하면 얼마나 많이 발전했는가 다시 한번 놀라게 되며 그 동안의 선배 연구진의 노고가 얼마나 컸는가를 새삼 절감한다.
모든 일이 계획만 훌륭하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 것이다.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전반적인 사회적 환경과 그에 맞는 노력과 투자가 선행되어야 한다. 지금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흉흉한 이공계 정부출연연구소의 개편안을 보면서 다시 한번 마음이 착잡하다. 정부가 이야기하는 정부출연연구소의 비효율성을 개선하는 일은 모든 국민이 바라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모든 구성원이 ‘정부가 바뀌었으니 또 시작이군!`하고 느낀다면 이것은 졸속개혁이 되고 말 것이다.
생명분야에만 특화된 생명연이 어찌 아무런 준비도 없이 효율성의 경제논리만 앞세워 카이스트와 통합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만일 우리나라의 공무원이 선진국에 비하여 효율성이 낮다면 그 해결책은 무엇일까? 경제논리만 따른다면 공무원을 선진국에서 수입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해결책은 공무원에 대한 투자와 노력으로 개개인의 자질을 선진국 수준으로 높여야 되는 것 아닌가? 일본이 국립대학을 법인화하기 위하여, 내·외부 구성원이 10년 동안 머리를 맞대었다는 것이 왜 이리 부럽게 느껴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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