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밖]9988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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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밖]9988234

  • 승인 2008-06-12 00:00
  • 신문게재 2008-06-13 21면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10대들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늙은이`의 나이를 적게 했더니 평균 37살인 것도 상대성 때문이다. 평균수명 36세인 짐바브웨에서는 30살 넘으면 완전히 노인 취급을 당한다. 수능 준비로 정신없을 16살이 한때 우리에겐 무르익은 이팔청춘이었고 필자 나이엔 원로 행세를 했다.


9988234. 99살까지 팔팔하게 살다 2,3일만 아픈 뒤 사망(4)하고 싶다는 소망을 숫자화한 것이다. 수명 연장은 수치가 나타내는 것 이상으로 위력적이다. 사는 것은 나이 먹는 것이지만 만만하지가 않다.

나이에 순응하고 마지막 순간에 맞서는 여유가 노년의 미덕이라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경지는 사실 아무나 못 누린다. 감기 걸리지 말라, 넘어지지 말라, 끊고(?) 살라. 늘그막 후쿠다 전 일본 총리의 자기관리는 평범하다 못해 시시하다.

지난 주말 대전무역전시관에서 열린 실버박람회에 다녀와 보니 결코 그건 시시한 조언이 아니었다. 심사위원 자격이었지만 몸은 늙어도 마음은 늙지 않은 신로심불로(身老心不老)의 인생 대선배들을 뵙고 오는 길은 만감이 서렸다. 저번 달에 역시 심사차 어린이날 큰잔치에서 새싹들과 마주했을 때보다 마음이 풋풋해졌다.

역설적이게도 실버산업(공식 명칭은 ‘고령친화산업`) 현장에서 청춘에 대한 욕망을 고스란히 재발견한 것이다. 한국이 세계 장수국 대열에 들어 가장 초스피드의 고령화 속도로 질주한다는 부담감에서만은 아니다. 절대적이며 상대적인 나이의 속성을 절감했다.

실감나지 않으면 가정(假定)을 적용하자. 현재 36살인 여성이 자신보다 나이가 위나 아래의 여성과 마주칠 확률이 반반씩이다. 현재 25살인 여성이 25년 뒤, 50살로 거리에 나서면 늙지도 젊지도 않다. 그때가 도래하면 남편 손잡고 도토리 줍는 50대를 보기 어려울지 모른다. 아마 실버박람회는 청춘박람회로 불릴 것이고 오래 살아 욕이 되지 않는 건강한 장수가 보건복지정책의 핵심이어야 할 것이다.

고령화 사회는 이미 청춘화 사회로, 고령친화시장은 청춘친화시장으로 치닫고 있다. 이상한 것 안 먹고 이상한 짓만 안 해도 100살까지 산다지만 문제는 기대수명, 평균수명보다 10∼12살 낮은 건강수명이다. 고령화가 심화될수록 질병, 빈곤, 노인실업, 노(老)테크 등 사회경제적 당면 과제가 촛불시위 현장의 컨테이너처럼 막아선다. 어쩔 수 없이 던져진 노후라면 늙음이 재앙일 수 있다. 대비가 필요하다.

노화의 다른 측면은 외부환경에 적응하려는 생명체의 적응 전략이다. 20대는 시속 20km, (…)50대는 50km, 그러다 고속도로로 갈아타는 속도 상승을 체감할 때 그냥 물 흐르듯 늙음을 인정하는 것도 한 방법이겠다. 어차피 가는 세월, 오는 백발. 화려하지 않아도 포도주 익듯 순리대로 늙고 싶은 것이 또한 호모 데시데로(Homo Desidero.욕망하는 인간)의 평범한 소망이다.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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