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기조 시인, 한국문협 명예회장 |
역사가들이 즐겨 이야기는 “루비콘 강을 건넌다”란 말이 있다. 루비콘은 북이탈리아에 있는 작은 강이다. 라벤나란 소도시를 끼고 흐르는 강인데 가뭄이면 물이 말라버릴 정도로 폭이 좁고 바닥이 낮은 강이지만 기원전 1세기, 루비콘 강을 건넌다는 말은 로마제국에 반기를 든다는 뜻으로 통했다.
당시 로마를 지배하던 폼페이우스는 휘하 장군들이 관할지역 밖으로 군대를 이동하면 반역죄 처벌법으로 처단했다. 이 때 알프스 남쪽 갈리아를 통치하던 카이사르는 고심 끝에 6,000여 군대를 이끌고 루비콘 강을 건넜다. “주사위는 던져졌다.”란 유명한 말이 이때 나왔다.
루비콘 강을 건너 운명의 주사위를 던진 것은 위대한 결정이었다. 이러한 결단을 내렸던 역사적 인물들이 하나 둘이 아니지만 역사는 탁월한 결정을 내리는 지도자들이 만들어 낸다. 지도자들이 이런 결정을 내려야하는 상황과 조건은 다를수 있지만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은 언제든지 다가온다.
온 나라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 때문에 홍역을 앓고 있다. 쇠고기와 광우병에 밀려 다른 일은 돌볼 여지가 없게 되었다. 그런데도 대통령의 결정은 국민에게 사과하는 것이었다. 이 결정이 나오기까지는 야당 당수의 권유와 쓴소리가 나온 뒤였기 때문에 국민의 가슴에 와닿지 않았다. 이러한 결정이 미적거리지 않고 적시에 나왔다면 일부에서는 박수를 쳐가면서 잘하는 일이라고 외쳤을 것이다. 결국 결정의 순간을 포착하지 못한 결과였다.
조직의 지도자나 국가의 지도자라면 그가 내린 결정은 전체 구성원의 운명을 결정한다. 미국의 대통령 트루먼은 “대통령이 현명한 결정을 내리면 국가에 다행이고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면 불행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전혀 결정을 내리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라고 말했다. 지난번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에게 사과할 때, 배석했던 장관들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국민들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밤 새워 고민한 듯, 피로한 기색이 역력한 대통령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장관들은 몇 번씩 고개 숙이는 일로 대신했는데, 그럴바에야 정신 차려 쇠고기 사태가 일어나지 않게 일을 챙겼어야 했다. 일이 터지고 난뒤에 서로 말 못하는 벙어리 신세가 얼마나 답답했겠는가 알만했다.
쇠고기는 먹는 문제일 뿐이다.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이념의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념의 세계는 생각과 지혜가 연관되고 사상과 주장이 앞선다. 때문에 촛불집회에서도 간간히 반미 구호가 들리고 정권에 대한 부정적 구호가 들린다. 이걸 보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일부 세력들이 숨어서 암약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소위 좌파세력을 지칭하는 말이다.
특히 문화계에 이런 세력이 가장 많다고 말하는데도 귀를 기울이지 않고 그 세력까지 모두 껴안고 가겠다는 정치세력이 있어 문제가 된다. “지금 좌와 우가 어디 있는가, 함께 껴안고 가야한다”는 그들의 말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안다면 이런 말은 있어선 안된다.
바로 이런 말이 사회 혼란을 부추기고 국민의 여론을 호도하는 구체적 단서가 된다. 지금의 문화계에는 분명히 좌파와 우파가 존재한다. 10년 동안 좌파에게 휘둘린 우파들의 기막힌 삶을 안다면 그런 말을 해서는 안된다.
좌파를 대표하던 문화계의 수장들은 지금 납작 엎드려 자신들의 터전을 굳히기 위하여 움크리고 있을 뿐 결코 물러가지 않는다. 그들은 드러나지 않는 거래에 익숙할 뿐, 지금까지의 생각을 지워내지 않고 있다. 이들을 물리칠 수 있는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우리의 정신문화는 상처투성이가 될 것이다.
루비콘 강을 건너고 주사위를 던졌다고 말하는 단호한 결정이 없다면 우리의 정신문화는 상처투성이가 될 것이다. 위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시기는 점점 힘을 잃고 문화계는 시끄러운 입씨름으로 날밤을 새운다.
트루먼의 말대로 위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설사 그 결정이 어리석은 결정이었다고 해도 그런 결정을 내리지 않는 것 보다 낫다란 생각이 앞서야 할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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