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문 (가), (나)에 나타난 삶의 속도를 비교 설명하고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개인으로서 어떤 삶의 속도를 가져야 하는지 자신의 의견을 논술하시오.
[유의 사항]
① 논지나 근거를 구체적으로 제시할 것
② 1200자(±100) 분량으로 쓸 것
③ 시간은 120분임.
(가)
정보화사회에서는 정보기술과 첨단기술 등을 바탕으로 하여 시간단축이 일어나고 있다. 고도로 발달하고 있는 컴퓨터 기술, 정보 통신 기술은 시간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려는 인간의 욕구를 반영한 것이다. 운송기술의 혁신이나 물류시스템의 개선도 ‘보다 빠르게`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이처럼 정보화사회에서는 상대방과의 ‘시간차(時間差)`에서 경쟁력이 좌우되고 있다. 그런 맥락으로 볼 때, 토플러의 빠른 자와 느린 자의 개념은 국가, 기업, 개인에게 모두 적용되는 개념인 것이다.
예를 들어 국가의 경우, 이 개념에 입각해 고속국가와 저속국가로 나눠 볼 수가 있는데 고속국가란 외부의 환경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할 수 있는 기동성을 갖춘 나라를 의미한다. 일본, 싱가포르, 대만 등이 이러한 국가에 해당한다. 반면에 러시아, 중국, 인도 등은 저속국가로 분류할 수 있다. 이런 동일한 개념으로 기업이나 개인의 경우를 해석해 볼 수 있다.
‘빠른` 경제 체제를 가진 나라는 가속적인고 역동적인 부 - 생산 기계(Wealth-machine)를 거대한 권력의 원천이자 경제발전의 원천으로 삼고 있는데 반해 저개발국가들은 그렇지 못하다. 이는 두 나라들 간의 원활한 경제 교류를 막는 장벽으로도 작용하고 있다. 세계의 주된 창출체제의 회전속도가 빨라지면, 판매하고자 하는 나라는 구매하고자 하는 나라와 같은 속도로 경제를 운영해야 한다. 이것은 느린 경제가 중추신경 반응을 빠르게 하지 않으면 계약과 투자를 빼앗겨 경쟁에서 완전히 밀려나게 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 윤은기, 『빠름의 느림의 時테크』중에서-
(나)
현대인들은 머리 회전이나 동작이 느린 사람보다는 민첩하고 빠릊빠릊한 사람을 더 좋아한다. 후자들은 잽싼 손길로 식탁을 정리하면서도, 나지막하게 부탁하는 소리까지 금방 알아듣고는 재빠른 동작으로 상대방의 요구에 응해 준다. 뿐만 아니다. 속셈에서도 그들을 당할 자가 없다. 그들의 신속한 동작, 재빠른 반응, 예리한 시선, 날씬한 외모, 선명한 윤곽 속에는 반짝이는 생동감이 넘쳐흐른다. 한 마디로 그들은 활발하고 재기발랄하다.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는 걱정할 게 없어요. 어쩌다 곤경에 빠졌다 해도 금방 헤쳐 나올 수 있는 사람들이니까요.”
그러나 나는 내 길을 선택하기로 했다. 바로 느림이 존재하는 영역이다. 나는 굽이굽이 돌아가며 천천히 흐르는 로 강(江)의 한가로움에 말할 수 없는 애정을 느낀다. 그리고 거의 여름이 끝나갈 무렵, 마지막 풍요로움을 자랑하는 끝물의 과일 위에서 있는 대로 시간을 끌다가 마침내 슬그머니 사라져 버리는 9월의 햇살을 몹시 사랑한다. 또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얼굴에 고귀하고 선한 삶의 흔적을 조금씩 그려 가는 사람들을 보며 감동에 젖는다.
시골의 작은 마을 카페. 하루의 노동을 끝낸 사내들이 가득 채운 포도주 잔을 높이 치켜든 채 그 붉고 투명한 액체를 가만히 응시한다. 지그시 바라보다가 드디어 조심스럽게 입으로 가져다 마시는 모습은 경건해 보이기까지 한다. 수백 년이 넘는 아름드리 나무들, 그들은 수세기를 이어 내려오면서 천천히 자신들의 운명을 완성해 간다. 아주 천천히. 그것은 영원에 가까운 느림이다.
느림. 내게는 그것이 부드럽고 우아하고 배려 깊은 삶의 방식으로 보여진다. 반대로 기다리기 싫다는 이유로 점심시간 종이 울리기 무섭게 구내식당으로 달려가거나, 수업 시간에도 정신없이 뛰어가 제일 앞자리에 앉아야만 직성이 풀리고,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하기 위해서 도서관으로 어디로 항상 종종걸음을 치곤 하던 친구들의 태도는 왠지 신경에 거슬렸다. 그런 친구들은 언제나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옷도 어른들처럼 입으려 했고, 어른들처럼 권위를 부리고 싶어 했다. 그러나 한 번 소홀하게 넘어가 버린 유년기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데……. - 피에르 쌍소,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중에서-
[논제 분석 및 출제 의도]
이 문제는 (가)와 (나)에 나타난 삶의 속도의 차이를 설명하고 현대를 살아가는 개인은 어떤 속도의 삶을 사는 것이 바람직한지를 구체적으로 논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가)글은 2006년에 출판된 책의 일부로 정보화 사회인 현대에서 빠른 시간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주고 있다. 빠른 속도가 개인이나 기업, 국가의 경쟁력을 좌우하며 빠르게 살지 않는 사회는 빠르게 사는 사회에 뒤지기 때문에 가능한한 최대로 빠르게 살아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나)글은 1998년에 프랑스에서 출간되어 우리 나라에서는 2000년에 번역되어 나온 책의 한 부분으로 저자가 느린 삶을 살기로 하였다는 내용이다. 즉, 사람들은 민첩하고 빠르게 행동하고 판단하는 사람을 좋아하지만 작가는 ‘부드럽고 우아하고 배려 깊은 삶의 방식`인 느림의 삶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가)와 (나)에 나타난 삶의 속도의 차이를 빠름과 느림의 차이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속도와 개인적인 속도의 차이로 볼 줄 알아야 하고, 개인이 빠르게 흘러가는 사회에 발맞추면서 개인적으로는 여유 있는 느린 삶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인지를 구체적인 논거를 들어 논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논술문을 쓰면서 어려서부터 빠른 속도에 지배당하여 여유 없이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삶의 속도를 조절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
[학생예문]
최유진 대전문지중학교 3학년
▲ 최유진 대전문지중학교 3학년 |
반면에 제시문 (나)는 (가)에서 제시된 빠르게 함으로써 나타나는 효과에 대해 비판적인 관점에서 쓰여진 글이다. 그러므로 ‘빠름`과는 반대되는 개념인 ‘느림`을 삶의 미학으로 삼으며, 이를 부드럽고 우아하고 배려 깊은 삶의 방식으로 여긴다. 제시문 (가)와 상통하는 내용으로서 제시문 (나)에서는 느린 사람보다는 민첩하고 빠릊빠릊한 사람을 좋아하는 사회 풍조나, 무엇이든지 빨리 하고 남보다 앞서기 위해 경쟁하는 유년기의 학생들을 제시한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이런 것들에 부정적인 견해를 밝히며, 느림의 미학을 추구하는 삶의 길을 선택한 작가의 의지를 밝히고 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개인으로서 가져야 할 삶의 속도는, 제시문 (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빨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시문 (나)에서 말하는 느림이 존재하는 영역은 물질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벗어나 인간적이고 정신적인 것을 추구하게 해 주는 점에서 유익하다고 할 수 있으나, 이는 ‘고도 산업 사회`, ‘정보화 사회`라는 명칭까지 붙은 현대 사회에는 합당하지 않다. 물론 정신적인 여유로움은 필수적이다.
특히 물질 만능 주의가 만발하는 오늘날, 공익을 무시하고 개인의 물질적인 이익만을 추구하는 풍조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정신적인 여유로움 추구를 강조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정신적인 여유로움을 추구하는 방법으로서 ‘느림`을 택하는 것은, 지금까지 빠른 속도로 개혁을 추구했던 현대 사회의 계속되는 발전을 저해할 것이다. 현대 사회가 지금처럼 발전한 만큼 정신적인 여유로움을 추구하는 방법도 지금 사회에 적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현대 사회의 빠른 삶 가운데에서도 정신적인 여유로움을 누릴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제시문 (나)에서는 경쟁력을 가지고 서로 우위를 차지하려는 유년기의 학생들의 모습에 대한 안타까움을 그려내면서, 활동적이기보다는 방관자적인 느림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 사회까지 오는 과정에서 ‘여유로움`은 결코 사회와 경제의 활동적인 성장에 있어서 도움이 되는 요소가 아니었다. 즉, 오늘날까지 이루어놓은 발전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경쟁심과 앞서가려는 의식 등을 가지면서 빠른 속도를 추구할 필요가 있다.
[총평]
안상호 대전대청중학교 교사
▲ 안상호 대전대청중학교 교사 |
이번 논제에서는 제시문 (가)와 (나)에 나타난 삶의 속도가 어떻게 다른지 그 차이점을 파악하고 현대인으로서 어떤 삶의 속도로 사는 것이 바람직한지 자신의 의견을 구체적으로 논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가)나 (나)의 의견을 지지할 수도 있고, 그 둘을 절충하는 의견을 주장할 수도 있다.
최유진 학생의 논술문은 문제에 충실하여 (가)와 (나)의 차이점을 밝히고 자신은 (가)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주장을 확실히 했다는 점에서 좋은 논술문이다. 피에르 쌍소의 책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가 우리 나라에서 2000년에 출간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이 책의 제목을 보면서 지금까지 바쁘게 열심히 살아온 것이 반성해야 할 일인 것처럼 느끼고 빠르게 사는 것보다 느리게 사는 것이 가치 있는 것처럼 생각했다.
그러나 최유진 학생은 느리게 사는 것이 현대 사회에 적합하지 않으며 현대 사회 발전에 저해가 될 거라는 이유로 빠른 삶의 속도를 주장한다. 그리고 저자가 부드럽고 우아하며 배려 깊은 삶이라고 정의한 ‘느림`을 방관자적인 삶의 태도로 본 것은 날카로운 지적이다.
최유진 학생의 논술문에서 보완해야 할 점은 서론이 없는 구성과 구체적 근거의 부족이다. (가)글과 (나)글의 삶의 속도의 차이점을 제시하는 것은 본론에 해당하는내용이다.
그러므로 이보다 먼저 자신이 보거나 느꼈던 삶의 속도에 관한 예화나 사례가 있었으면 더 흥미 있는 글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현대인이 빠르게 살아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근거로 느린 삶이 현대 사회에 적합하지 않으며 사회 발전을 저해할 거라는 근거를 들었는데 왜 적합하지 않으며 왜 발전에 저해가 되는지 구체적인 근거를 들지 않았다. 하나 더 욕심을 부린다면 삶의 속도를 사회적인 속도와 개인적인 속도로 나누어 볼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즉, 사회의 일원으로서 살 때는 빠른 사회의 속도를 따라서 살지만 순수한 개인으로서 살 때는 부드럽고 우아하며 배려 깊은 삶을 살 수도 있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으면 좋았겠다.
가장 좋은 공부는 책을 많이 읽는 것이라고 한다. 제시문이 들어 있는 책을 읽어서 저자의 주장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하고 있다면 논술문제의 파악과 답을 쓰는 일이 한결 수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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