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남 목사(한국교회인권센터 이사장) |
그들의 자손은 차별과 냉대 속에 지금도 중국과 러시아, 일본에서 소수민족으로 살아오고 있지 않은가. 애국지사의 후손들은 어려운 집안환경 때문에 배우지 못하여 쓰임을 받지 못한 상황에 처하고, 친일파의 후손들은 일본으로 유학을 다녀와 자유당 정권에 등용 되었으니 누가 나라를 위하여 생명을 받치려고 할 것인가.
적당히 눈치나 보면서 사는 것이 잘 사는것이라고 생각하도록 만들었으니 부끄러운 역사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염려가 되기도 한다.
박정희 정권은 5.16쿠데타를 일으켜 헌정을 무너뜨리고 정권을 장악했다. 정권을 무력으로 찬탈하였으니 어떻게 역사가 바로 세워졌다고 하겠는가. 학생과 정치인·노동자·농민, 재야의 많은 양심수들을 옥에 가두고 고문한 그들이 애국지사인 양 떵떵거리고 살아가고 있다.
전두환 정권은 명령과 질서를 생명처럼 귀중히 여기는 군 질서를 파괴하며 상관을 연행하고, 군사반란을 일으켜 제5공화국을 세웠다. 그는 광주학살의 주범이며 많은 양심수를 극한의 고통으로 몰고 간 자였다.
보다 못한 민중은 6.10대회를 통해 민주화의 물꼬를 틀었다. 5공화국의 말기 쯤인 1987년 1월 14일 서울대생 박종철군이 물고문으로 죽는 사건이 일어났다. 마침 그때는 대통령을 직접 선거로 뽑을것이냐, 간접 선거로 뽑을것이냐 하는 논의가 뜨겁던 때 였기 때문에 이 사건은 큰 파문을 몰고 왔다. 그 파장은 추모대회와 평화대행진으로 이어지면서 결국 ‘민주헌법쟁취를 위한 국민운동본부`라는 범국민적 기구를 탄생시켰다.
순결한 한 대학생을 고문으로 죽여놓고서도 발뺌 하는 그 부도덕성이 국민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던 것이다. 이런 흐름에 위기를 느낀 당시 정권은 4월 13일, 대통령 직선을 위해 법을 고치는 문제는 더이상 이야기하지 말라는 이른바 ‘호헌조치`를 발표한다.
국민들은 더욱 큰 분노를 느끼면서 불같이 일어났다. 호헌반대여론이 각계각층으로 번지면서 교수, 교사, 시민단체, 예술인, 연예인 등이 잇따라 성명을 발표하고 나섰다. 그런던 중 연세대생 이한열군이 경찰의 최루탄에 맞아 죽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러자 그 동안 마음으로만 지지를 보내던 시민들이 거리로 나섰다. 6월 10일 민정당이 노태우 대표위원을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던 그날, 전국에서는 ‘독재타도`, ‘직선제 쟁취`의 함성이 온종일 메아리쳤다.
대전 충남에서도 6.10대회 참석하려는 충남대 학생들이 서대전경찰서 앞을 통과해 수많은 시민들과 함께 독재타도와 민주쟁취를 외치던 모습이 생생하다. 그리고 같은날 천안역에서 3.1운동 만세사건 이후 처음 수많은 시민들이 모여 민주화의 함성을 외쳤으며, 그 무렵 저녁 6시만되면 대전역 앞에 시민들이 모여 군사정권 퇴진운동을 벌였다.
대전충남의 재야 인사와 학생들은 직장과 학교에서 쫓겨나고, 옥고를 치르며 많은 희생을 감내했다. 마침내 6월 29일, 노태우 대통령 후보는 국민들의 대통령 직선제 뜻을 받아들이겠다는 내용의 ‘시국수습을 위한 8개항`을 선언했다.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이 빛나는 승리를 거둔 순간이었다.
6월 항쟁은 진정한 민주화 시대의 발판이 되기에 충분했다. 사회 각 부문마다 군사문화추방과 민주화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우리 민족의 최대 과제인 민족 통일의 물꼬도 터지기 시작한 것이다.
6.10항쟁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고 기념행사가 다채롭게 열리고있다. 6월 민주화 운동과 최근 쇠고기파동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국민이 원하는것이 무엇인지 알고 섬기는 자세로 국정을 이끌어 나갈 때 민주주의는 꽃을 피우며, 아름다운 나라가 만들어 질 것이다. /이명남 목사(한국교회인권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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