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이 대목, 새끼들이 아비의 몸을 뜯어먹는다는 처절한 의인화에서 가시고기 전설은 피어난다. 죽으면서까지 몸바친 숭고한 사랑으로 덧칠하지만 물고기 입장에선 아비의 육신이기보다 싱싱한 먹이를 취하는 사소한 일상사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후세를 남기고 떠나는 건 자연계의 정한 이치다.
알다시피 캥거루는 새끼가 다 크도록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취업 능력이 되는데 부모에 얹혀사는 자녀를 그래서 캥거루족이라 일컫는다. 자녀 곁을 맴돌며 해결사를 자처하는 부류는 헬리콥터족이다. 구직 대열에 낀 자녀를 둔 부모 열 중 넷이 헬리콥터 부모로 떠다닌다는 통계다.
부르면 5분 대기조처럼 출격하는 부모가 썩은 말뚝 하나에 쩔쩔매는 자녀를 만든다. 돈 부쳐주고 멀찍이 지켜보는 인공위성 부모가 교육상으로 더 플러스가 될 수 있다. 기억할 것은 인류가 값비싼 공포의 대가를 치르고 집과 음식과 배필을 구했다는 냉엄한 사실이다. 미지의 직장, 미지의 정글로 뛰어드는 담력을 갖추고서야 열매를 소유한다는 평범한 진리는 가르칠 만하다.
프랑스의 경우, 미취업자 80%가 캥거루족인 한때가 있었다. 대책은 직업훈련 강화와 실업수당 감축이었다. 로마시대에는 이와 달리 실업문제에 접근했다. ‘빵과 서커스’, 일용할 빵을 거저 주고 검투시합의 눈요기로 불만을 다독이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최소한의 구매력을 갖출지라도 능동적 소비 주체로는 역부족이다.
헬기 부모 아래 헬기 키즈도 그럴 수 있다. 하기야 치맛바람, 당나귀 탄 학동의 부형들이 훈장을 만나던 옛적 당나귀바람도 부모 마음이다. 하지만 자식을 위한 슈퍼맨과 원더우먼이고 싶은 마음을 접고 자녀를 헬기에서 가만 내려놓는 것도 사랑이다. 전폭기 부모로 진화하기 전에 그래야 한다. 내 머리 위에 프로펠러가 안 달렸는지 자성하면서.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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