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나도 풍경화를 하겠다는 한국화가 남강(南岡) 이재호 교수(56 한남대 미술대학 회화과)는 풍경화를 하다 보면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고 말한다.
서천군 마서면에서 태어났지만 초중고는 물론 대학까지 대전에서 다닌 이 교수는 “스무 살 청년 시절 눈 내리는 산사에서 눈의 무게에 못 이겨 소나무 가지가 부러지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아련하다”면서 “그 후 소나무 뿐 아니라 바위, 꽃, 나뭇잎도 자신만의 소리를 낸다는 생각을 가지고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됐다”며 풍경화를 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한남대 미술교육과 첫 졸업생인 이 교수는 후배이자 제자들에게 인간도 자연의 일부임을 강조하며 맑고 깨끗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 자연과 자주 만나고 아름다운 풍경과 시간, 감동적인 마음을 항상 가슴에 담아 두었다가 작품 할 때마다 하나씩 하나씩 꺼내보라고 권한다.
지난해까지 미대 학장을 맡아 바쁜 일과를 보낸 이 교수는 지금도 수업이 없는 주말이면 스케치 가방을 챙겨 산과 바다, 섬으로 여행을 떠난단다.
“일반인은 숲에 가서 나무를 보지만 화가는 숲을 보고 체취를 느껴야하기 때문에 자연을 많이 접하는 게 작품 활동의 밑거름”이라고 강조하는 이 교수는 “한 때는 설악산에 흠뻑 빠져 30여 차례를 다녀왔고 금강산도 6개월 새 3번을 다녀왔는데도 아직도 시시각각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자연의 얼굴이 궁금하다”며 웃는다.
▲이재호 화가(한남대 미술대교수) |
위로 누나 셋을 둔 막내이자 외아들로 자랐다는 이 교수는 “어머니가 마흔 살에 낳은 늦둥이로 나이 많은 누나들과 생활하다보니 혼자 사색할 시간이 많았던 것 같다”며 “외아들인데도 다른 욕심 안 내시고 하고 싶은 그림을 할 수 있도록 후원자 역할을 해주신 부모님이 계셔 화가의 꿈을 이뤘다”고 회고했다.
지난 1984년 첫 전시회 이후 15회째 개인전을 갖는 이 교수는 오는 12일부터 열흘간 대전 현대갤러리에서 조수화충주전(鳥獸花蟲舟展)이란 주제로 전시회를 갖는다.
이번 전시회에 대해 이 교수는 “31살에 첫 개인전을 앞두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전시회 작품 몇 점을 제외하고 20대에 한 작품들을 모두 태워 버린 적이 있다”며 “이번 작품들은 산수풍경을 하면서 정체된 느낌이 들 때마다 공간구성을 위해 했던 문인화의 소재들을 풍경 속에 담아 재해석한 것들로 다양한 기법과 작품세계를 보여주고자 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원형의 공간에 붉은 양귀비와 나팔꽃, 조롱박, 등꽃들을 배치해 이 교수 특유의 발림법으로 배경을 잔잔히 살리고 족자형태의 액자그림에는 버들과 달팽이 소나무와 달, 포도, 수련 등으로 사계절을 표현한 이번 전시회는 ‘남강식 신문인화’라는 평을 듣고 있어 이 교수의 또 다른 작품세계를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작품을 액자에 끼워 전시장에 거는 순간 그 그림들은 이미 내 작품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이 교수는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다양한 시각과 느낌으로 작품을 재창조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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