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문 (가)의 내용을 요약하고, 이를 바탕으로 제시문 (나)의 ‘녀석`과 (다)의 한국인에 나타난 태도를 비판하면서 타민족 혹은 재외동포를 대하는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 서술하시오.
[유의사항]
1. 답안에 자신을 드러내는 표현을 쓰지 말 것.
2. 제시문의 문장을 그대로 옮겨 쓰지 말 것.
3. 분량은 띄어쓰기를 포함하여 1,600자(±160자)가 되게 할 것.
(가)
동양은 학문, 예술, 상업에서 유럽적 진보의 본류로부터 소외된 장소로써 존재했다. 따라서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간에 동양에 귀속된 가치는 모두, 서양인이 동양에 대하여 지녔던 고도로 전문화된 관심에 의해 만들어진 것과 같았다.
동양인은 후진적, 퇴행적, 비문명적, 정체적 등의 여러 가지 호칭으로 불리는 다른 민족과 함께, 생물학적 결정론과 윤리적·정치적 교훈으로 구성되는 틀 속에서 관찰되었다. 그리하여 동양인은 비참한 이방인이라고 하는 표현이 가장 적합한 아이덴티티를 공유하는, 서양 사회 속의 여러 요소(범죄자, 광인, 여자, 빈민)와 결부되었다. 동양인이 동양인으로서 보이거나, 주목된 적은 없었다.
그들은 시민으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아니고, 해결되어야 하고 한정되어야 하며 또는-식민주의적인 여러 세력이 공연히 그들의 영토를 욕구하는 경우에는-접수되어야 할 문제로서 간파되고 분석되었다. 요컨대 대상을 동양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이미 평가적인 가치판단을 포함하고 있고, 동양인은 종속 인종의 일원이었기 때문에 반드시 종속되어야 했다.
그러나 잠재적인 오리엔탈리즘의 역할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상할 정도로 남성적인 세계 개념을 촉진했다. 현대의 전문가 집단과 마찬가지로, 오리엔탈리스트들도 또한 스스로와 스스로의 주제를 성차별주의의 색안경을 통해 바라보았다. 이것은 여행가와 소설가의 저작에 분명히 나타나 있다. 곧 여성이란 보통 남성적인 권력 환상에 의해 만들어진 생물이라는 것이었다. 여성들은 무한한 관능의 매력을 발산하고, 다소간 어리석으며, 무엇보다도 그들은 순종한다. 나아가 남성적인 세계 개념은 실천적인 오리엔탈리스트들에게 영향을 끼쳤고, 그것은 정지되고 얼어서 영구히 변화하지 않는 것으로 변하는 경향을 가졌다. -Edward W. Said, (오리엔탈리즘)에서
(나)
녀석의 하숙방 벽에는 리바이스 청바지 정장이 걸려 있고
책상 위에는 쓰다만 사립대 영문과 리포트가 있고 영한 사전이 있고
재떨이엔 필터만 남은 켄트 꽁초가 있고 씹다 버린 셀렘이 있고
서랍 안에는 묶은 플레이보이가 숨겨져 있고
방 모서리에는 파이오니아 앰프가 모셔져 있고
레코드 꽂이에는 레오나드 코헨, 존 레논, 에릭 클립튼이 꽂혀 있고
방바닥엔 음악 감상실에서 얻은 최신 빌보드 차트가 팽개쳐 있고
쓰레기통엔 코카콜라와 조니 워커 빈 병이 쑤셔 박혀 있고
그 하숙방에, 녀석은 혼곤히 취해 대자로 누워 있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꼼짝도 않고
- 장정일, '하숙'
(다)
한국 업체에 고용된 동남아 출신 근로자들에게는 인권 유린과 저임금이 당연한 통과 의례가 되어 버렸다. 인종 차별적인 비아냥과 욕설을 일상어처럼 들어야 하고, 상습적으로 구타를 당한다는 게 외국인 노동자들의 하소연이다.
한국인에 비해 턱없이 적은 임금을 받는 이들에게 “그 정도 월급이면 너희 나라에서는 1년을 벌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거나, 그들이 합숙소에 생활용품을 공급해 달라고 요구하면 “못 사는 데서 왔기 때문에 물욕이 많다.”고 대응하며, 작업 속도가 느리면 “돈 벌러 왔으면 더 열심히 일해야 하는데도 게으르기만 하다. 그러니 너희 나라는 천상 가난할 수밖에 없다.”고 면박을 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산업 연수생으로 온 미얀마 근로자는 자신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토로하고 있다. “한국에 있는 동안 저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처음에 한국에 올 때에는 열심히 일을 잘하면 일한 만큼 돈도 벌고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동남아 사람이라는 이유로 처음부터 월급이 적게 책정되고 생산량이 더 많아도 한국인만큼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게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또 한국에 있는 동안 유럽인이나 미국인을 대하는 태도와 우리 동남 아시아인을 대하는 태도 사이에 차이가 큰 것을 보면서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동남 아시아인, 아프리카인, 유럽인, 미국인, 한국인 모두가 붉은 피가 흐르는 같은 사람이 아닙니까?
[논제 및 출제의도 분석]
미국산 수입 쇠고기 파동이 현재 우리 사회의 커다란 이슈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와중에 햄버거의 소비가 급감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Fast Food점이 우리 사회에 서서히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던 20여 년 전만 해도 Fast Food점의 햄버거는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가난한 그 시절에 우리가 부러워했던 것은 햄버거가 아니라, 서양의 문화였다. 즉, 우리보다 우월한 서양을 추종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막연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우리는 햄버거에 열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오리엔탈리즘이란 서양이 동양을 바라보는 시각을 가리키는 말이다. 근대 초기부터 서양인들은 동양인을 결핍되고 저급한 존재로 인식하였다. 이러한 생각 때문에 서양인에 의한 동양인의 차별은 정당한 것으로 여겨졌다. 물론 이러한 시각은 서양을 모든 문명의 중심에 놓고 생각할 때에나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 사회에서 오리엔탈리즘을 거의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려는 경향이 강했다는 점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왜냐면 각 민족은 그 민족 나름의 고유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우리도 우리만의 고유한 장점이 되는 문화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서구의 문화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다는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또한 오늘 날 우리 사회에서 서양인들이 경험했던 유사한 잘못들을 동일하게 범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동남아인들에게 있어서 예전에 서구 열강이 우리나라에 행했던 것과 같은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는 이른바 ‘한국식 오리엔탈리즘`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오래 전부터 서양인에게 잠재되어 있던 동양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태도, 동양인들 스스로 규정지었던 동양인의 자기 부정적 태도에 대한 깊은 반성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매우 절실하고 필요한 것이라 보며, 과거의 역사를 반성적으로 살펴보자는 의도에서 이 문제를 출제하였다.
[학생답안]서일고등학교 3학년 한경록
▲ 한경록 서일고등학교 3학년 |
이러한 오리엔탈리즘적 사고는 다분히 현대인에게서도 관찰된다. 제시문 ‘나`와 ‘다`도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나`의 ‘녀석`을 살펴보면 주변에 수많은 외국의 물건을 볼 수 있다. 그의 생활품은 다국적이라는 말보다 차라리 맹목적 숭배에 가깝다. 온통 서양의 물건에 둘러싸여 있는 ‘녀석`은 취해 누워 있는 그의 모습에서 이성이 마비된 채 의욕적이고 진취적인 삶의 모습을 잃어버린 모습을 볼 수 있고, 이는 오리엔탈리즘에 의해 묘사된 동양인의 모습과 흡사하다.
제시문 ‘다`의 경우, 오리엔탈리즘적 인식은 극에 달한다. 외국인 노동자를 대하는 한국인의 태도가 차별적이라는 사실은 극명하게 드러난다. 인종차별적 발언과 욕설, 그들에게 주어지는 불공평한 임금과 대우는 어떠한 것이 그들로 하여금 외국인 노동자를 이렇게 대하게 만드는가에 의문을 품게 만든다. 이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인종이라는 개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흡사 서양인이 동양인을 보던 시각과 다름없는 것이다. 게으르다거나 물욕이 많다고 하는 등 생물학적으로 인종의 성격이 결정된다고 생각한다거나 그 국가들의 가난이 마치 이미 결정된 듯이 인식하는 것은 오리엔탈리즘적 사고와 다를 바 없다.
이 ‘나`, ‘다` 두 제시문에서 드러난 공통점은 오리엔탈리즘의 내면화이다. 본래 서양에서 동양을 바라보던 시각이 특정 동양인들, 즉 동양인 중에서도 비교적 선진국 반열에 오른 나라의 국민사이에 내면화되어 오리엔탈리즘과 유사한 생활태도를 가지게 된다. 이는 무엇보다도 자신보다 나은 대상에 가지는 경외심과 자신보다 못한 것에 대해 가지는 우월의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제시문 ‘나`를 다시 살펴보면 서양의 것에 대한 그의 맹목적 추종은 일종의 경외심으로서 자기 자신을 나은 대상처럼 내면화시키고 끝내는 스스로에 대한 자기부정에 이르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다`의 경우에도 동남아 사람에게 가지는 우월의식은 오리엔탈리즘에 기반을 둔 천대와 무시로 표출된다. 즉, 스스로를 서양에 가깝게 내면화시켜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높이고 이를 실현하지 못한 타 대상에 대해 백안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오리엔탈리즘적 사고는 분명히 타파되어야 할 그릇된 인식이자 왜곡된 시선이다. 인간의 존엄과 특질은 어떤 운명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보편적 상식이 되어가는 현대에서 오리엔탈리즘은 구시대의 산물에 불과하다. 우리가 타민족이나 재외동포를 올바르게 인식하기 위해 가져야 하는 것은 그들을 어떠한 열등한 존재로 몰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존중과 관심을 통해 종속되지 않는 하나의 진정한 개체로 인식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총평]서일고등학교 교사 김헌식
▲ 김헌식 서일고등학교 교사 |
핵심적인 단어들을 적절하게 활용하면서도 제시문의 표현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자신의 언어로 정리했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또한 (나)와 (다)의 제시문에 대한 이해가 제대로 이루어졌기에 (가)를 토대로 한 (나)의 ‘녀석`과 (다)의 ‘한국인`에 대한 태도의 비판이 올바르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특히 (나)의 ‘녀석`과 (다)의 ‘한국인`에 대한 태도의 공통점(오리엔탈리즘의 내면화)을 살펴본 것은 참으로 참신했다. 아울러 바람직한 방향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생각을 강하게 투영하고 있다는 점도 좋았다.
이러한 내용을 나타내는 과정에서 문단의 배치도 비교적 무난했다고 본다. 서론-본론-결론의 방식을 채택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 답안에서는 전부 5개의 문단을 배치했으며, 1문단에서 제시문 (가)의 내용요약을, 2~4문단에서 (나), (다)에 나타난 ‘녀석`과 ‘한국인`의 태도 비판을, 5문단에서 타민족 혹은 재외동포를 대하는 바람직한 방향을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구성은 매우 단순하지만 문제에서 논하고자 하는 바에 대한 해답을 선명하게 제시하는데 적합하다고 본다. 다만 바람직한 방향에 대한 의견 제시가 다른 논의 사항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은 옥의 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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