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철중 대전문예의전당 후원회장 |
2004년 11월 대전 예술의 전당에서 처음 접한 ‘심청`은 충격 그 자체였고, 부임 후 첫 작품 ‘얼음 강` 또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신문지를 횃불처럼 말아 쥔 남성 무용수의 도약은 압축성장의 역동성을, 무색 립스틱만 걸친 여성무용수의 소리 없는 비명의 몸짓은 민주화투쟁의 고통을 상징하는 듯 하였다.
“아! 이 춤은 개발연대(年代)의 재해석이요, 음지에 섰던 자들에 대한 씻김굿이로구나.”라고 느꼈다. 다만 ‘표제`는 있으되 이념의 유혹에 오염되지 않고 ‘절대`예술의 순수함을 지켜낸 작품이기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었다.
어린이날에 보여준 우리 고유의 창조설화 ‘마고`는 또 어떤가? 전통예술 판소리를 무용화한 심청에서 어린이를 위한 마고에 이르기까지, 씨는 단순한 창작 무용을 뛰어넘어 한국과 한국인의 정체성을 천착하고 이를 소리 없는 드라마로 만들어내는 일에 정진하고 있으며, 또한 그 때문에 충실한 팬들이 서울에서 부산에서 대전을 찾아오는 것이다.
지난달 31일 전당 앙상블 홀에서 대전시립무용단 제45회 정기공연 ‘불이문`을 보았다. 삶과 죽음이라는 무거운 철학적 주제에 어떻게 도전하는가? 하는 궁금함 속에 공연을 보았다. 씨의 독창적 브랜드(Trademark)는 역시 초지일관이다.
의상은 한복을 모티브로 한 흑백의 앙상블, 무대는 넓게 쓰되 정지동작에서 무용수의 배치는 한국화적 설치미술로서 미장센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였고, 몸짓 또한 태껸과 탈춤 동작의 변주곡이다. 생의 문과 사의 문이 본시 두개가 아니라는 다소 통속화한 주제의 풀이가 결코 범상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거기에는 불가의 윤회가 있고 천상병의 귀천(歸天)이 있었다.
씨는 우리의 정체성 찾기에서 철학과 종교로 외연(外延)을 넓힌 것일까? 이번 공연의 압권은 부안무자최지연씨의 윤곽이 뚜렷한 미모를 살린 피날레였다. 관객석에 한껏 다가와 임종 직전 한 순간 환희에 가득 찬 표정을 짓고는 이내 목이 꺾인다. 이것이 김매자씨의, 또한 열반으로도 부르는 가장 한국적인 죽음에 대한 해석이다. 칠순을 바라보는 만년 소녀 김매자씨의 우리 정체성에 대한 천착은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내 것 찾기는 한편으로 국제화의 길이기도 하다. 뮤지컬 노트르담 서막을 보라. 음악에는 사물놀이 가락이, 무용에는 우리 춤의 몸짓이 그득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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