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선 충남대학교 언론정보학과 |
지난 대통령·국회의원 선거를 치르면서 눈에 띄는 현상 중의 하나는 20대의 투표율이 매우 낮았다는 사실이다. 20대의 총선 투표율은 20%에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정치 소양이나 시민의식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도 뵈질 않는다면서 젊은 세대를 혹평하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20대의 저조한 투표율 책임을 오로지 그들에게 전가해서는 곤란하다. 광우병 촛불 시위에서 보듯 온라인상의 소통 구조를 갖춘 20대 젊은이들은 ‘투표 정치` 부문에는 식상했을지언정 ‘삶의 정치`에 무관심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20대를 비롯한 유권자들이 투표에 참여하지 않게 된 다른 이유들을 찾아봐야 한다. 혹시 신문이 그 책임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 않을까?
세계적으로 어느 나라나 겪는 현상이지만 신문의 위기는 사뭇 심각하다. 연간 신문산업의 광고매출액은 대체로 답보 상태를 면치 못하거나 예년에 비해 오히려 그 비중이 줄어드는 추세다. 독자 숫자가 줄어들고 있는 현상과 매우 밀접하다. 신문에 광고를 게재하는 광고주들이 신문사에 지불하는 광고요금은 좀 거칠게 표현하자면, 그 광고가 신문의 몇 면에 실렸느냐, 어느 정도의 크기로 실렸느냐 하는 점과는 별로 관계가 없다. 광고가 얼마나 크게 실렸느냐 하는 것이 신문광고요금을 결정하는 절대 기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 신문의 광고요금은 그 신문을 보는 사람들이 몇 명이냐, 하는 걸로 정한다. 서울에서 발행되는 큰 신문에다가 게재하는 아주 작은 광고의 가격이 지역에 있는 신문에 전면 광고를 게재하는 것보다 훨씬 비싸다. 독자 숫자가 다르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의 큰 신문들에다가 광고를 게재한 기업들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큰 신문들이 촛불시위의 진실을 왜곡보도하고 있다고 판단한 네티즌들의 강력한 항의 때문이다. 몇몇 기업들은 자사의 홈페이지에다가 그들의 광고게재가 신충치 못했다면서 사과문을 실었다. 한편, 우리 지역의 신문들은 최근 신문구독료를 1만원에서 1만3000원으로 인상했다. 유가 인상 등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일 것이지만 구독료 인상이 지역 신문사의 판매 및 광고료 수입 증대로 연결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구독료 인상에 부담과 저항을 느낀 신문독자들의 이탈은 구독료 수입 뿐만 아니라 동시에 신문광고 수입의 하락을 가져올 수 있다. 신문을 읽는 독자들의 숫자가 감퇴한다는 것은 신문산업의 위기를 의미하지만 그것은 바로 민주주의의 위기를 불러오는 요인이 될 것이다. 전체 유권자, 특히 20대의 저조한 투표참가율은 신문시장의 축소, 신문을 읽지 않는 국민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과 무관치 않다. 전문가들은 신문에 대한 독자들의 불신이 신문산업의 가장 큰 위기 요인이었다고 진단한다.
‘뉴스는 관점`이다. 신문은 관점이 있는 뉴스를 독자들에게 제공함으로써 현 위기를 타개해 나가야 한다. 누구의 관점에 맞출 것인가를 결정하고 실행하는 것은 물론 신문사의 몫이지만 해답은 의외로 가까이 있다. 광고주가 주목하는 것은 구매력 있는 독자들의 숫자이다. 그렇다면 신문은 신문이 위치하고 있는 지역 독자들의 눈높이와 시각에다가 뉴스의 관점을 맞춰야 한다. 관점 뿐만 아니라 사건의 본질을 짚어주는 역량도 발휘해야 한다. 수천 만원에 달하는 부정한 금품 수수 의혹을 ‘떡 값`이라고 보도해선 안 된다. 본질 그대로 ‘뇌물` 의혹이라고 제대로 다뤄야 한다. 목 좋은 곳에다가 번듯한 가게를 차릴만한 금품의 액수를 감안할 때 최소한 ‘떡 가게 값`이라고 풍자하고 비틀기라도 해야 한다.
신문사의 규모가 작고 신문종사자들 숫자가 적다고 해서 움츠러들 일도 아니다. 우리 지역의 신문독자 시장은 결코 작지 않다. 주로 서울에서 발행하는 전국지를 읽고 있긴 하지만 대전 시민 가구의 절반이 날마다 신문을 구독하고 있다. 신문이 독자들을 다시 불러 모아서 위기를 벗어나야 어둡고 침침한 민주주의의 장래가 밝아질 수 있다. 관점이 있는 뉴스, 본질을 헤아려보는 뉴스를 제공하는 것만이 잃어버린 독자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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