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가득한 서실에서 초여름 수련을 그리고 있던 여류 서예가 춘곡(春谷) 강성애(57 한국노동문화예술협회 대전지부장)씨는 “시, 서, 화를 다 잘하기는 실로 어려우며 문인화는 화가의 영역이 아닌 선비문화를 근간으로 하기 때문에 문자향이 서려야한다”고 문인화를 정의한다.
화가인 오빠(서양화가 강성렬) 덕분에 그림을 배우고 글씨(서예)를 쓰다 보니 문장을 짓고 싶은 욕망에 한학까지 공부하게 되었다는 강 씨는 “그림을 그리고 그림에 맞는 시를 지어야하는데 아직도 시 짓는 게 가장 어려운 작업”이라고 토로한다.
스물다섯이란 다소 늦은 나이에 서예를 시작한 그녀는 30여년을 한결 같이 새벽 5시면 서실에 나와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린다.
▲ 여류 서예가 강성애씨 |
한국조폐공사 초대 노조 여성 부위원장을 역임하면서 노동문화운동에 눈을 뜬 그녀는 “학문에는 남녀의 차별이 없는데 현실에서 보여 지는 불평등으로 여권신장과 평등을 주창했었다”며 “회사를 명예퇴직하면서 결국 학문의 길로 돌아왔지만 그 때 맺은 인연으로 아직도 한국노동문화예술협회 대전지부장을 맡고 있다”며 웃었다.
올해로 29회를 맞는 근로복지공단에서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마련하는 근로자문화예술제 1회 대회(1980년)에서 최고상인 문교부장관상을 수상하면서 조폐공사 내 자체 미술제를 개최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던 그녀는 “순수와 열정이 살아 숨 쉬는 노동문화운동을 했던 것이 학문과 예술의 사상적 밑거름이 되었다”고 회고했다.
대전미술대전 서예부문 초대작가로 노동문화운동을 하고 사서삼경을 읽고 쓰던 그녀가 지금 가장 몰입하는 일은 용연학당(龍淵學堂)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일.
그녀의 강인한 이미지와 다소 어울리지 않을 듯한 어린이 교육에 대해 그녀는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아이들에게 고전을 통해 바른 생각을 심어주고 반듯하게 키우는 것이 학문의 근본임을 깨달았다”며 “처음 학당을 시작하며 가르친 유치원생이 어느덧 한학과 서예를 전공하는 대학생이 된 것을 보니 용연(龍淵)이란 연못에서 꽤 많은 용들을 길러낸 것 같다”며 수줍어했다.
지금도 수 십 여명의 어린이들이 학당에 찾아와 그녀에게 서예와 천자문, 몽학동감을 배우며 훌륭한 용으로서의 승천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노동문화예술협회 대전지부장으로서 오는 10월 전시회 기획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녀는 “하고 싶은 일 중 하나가 개인전을 여는 것이지만 한시(漢詩)를 주고받으며 소통할 수 있는 도반들과 더 많이 만나 예술로 소통할 수 있길 기대한다”고 소망을 피력했다./임연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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