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밖]다시 뽕 따러 가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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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밖]다시 뽕 따러 가야겠네

  • 승인 2008-05-29 00:00
  • 신문게재 2008-05-30 21면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뽕나무는 버릴 게 없다. 잎(상엽), 열매(상심), 가지(상지), 뿌리껍질(상근백피)까지. 뽕나무재(상시회), 뽕나무버섯(상이), 뽕나무이끼(상화, 뽕나무겨우살이(상상기생), 뽕나무좀벌레(상두충)까지도. 그래서 신목(神木)이라 불린 그 뽕나무가 부활하고 있다. ‘상전벽해(桑田碧海)`가 거꾸로 진행되는 듯한 이즈음, 뽕의 향수를 되살려본다.


시경에 상중(桑中), 즉 뽕나무밭 가운데서 밀회를 즐겼다는 기록이 보인다. 도연명의 파라다이스, 무릉도원의 배경으로도 뽕밭이 묘사된다. 남하하던 조조 군대가 먹던 비상식량이 도토리와 뽕 열매인 오디였다.

전설의 여주인공 진나부가 성 남쪽에서 따던 것도 뽕잎이었다. 밭 갈려던 사내의 소를 잃게 한 그 미모에 반해 길 가던 태수(또는 왕)가 “내 수레에 타지 않겠느냐”고 제의하고 그녀는 거절한다. 이 이야기가 담긴 맥상상(陌上桑)이란 악부가 중국 초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다. 그렇기로서니 ‘야타족` 이야기 아닌가.

뽕 이야기라면 우리가 중국에 뒤지지 않는다. 동네 처녀들을 모아 뽕잎을 따는 날이면 어찌 알고 총각들이 얼쩡대더라고 서산의 뽕밭 주인은 증언한다. 누에 치는 계절이면 뽕잎 따는 일에 처녀들이 몰렸고 뽕밭은 자연스레 밀회 장소가 됐다. 뽕보다 임이라고, 음양의 두 극이 있는데 허스토리와 히스토리가 생기는 건 사세당연한 일.

뽕밭에서만이 아니었다. 삼밭, 보리밭, 목화밭에서 만나 백년가약을 맺은 커플도 적지 않았다. 목화밭이라는 가요가 있고 마중(麻中) 러브스토리가 사설시조로 청구영언에 실려 있다. 삼밭으로 들어나 가세, 작은 삼대는 쓰러지고 굵은 삼대는 춤을 춘다, 라고 민요는 남녀간 열락을 표현했다. 이 핑계 저 핑계 대고 도라지 캐러 간다, 임도 보고 뽕도 딴다. 이거 괜히 나온 속담이 아니다. 뽕밭에 비만 안 왔어도 너만한 아니가 있다는 흰소리는 70년대식 농담이다.

드러내놓기를 꺼리지만 현재 초로기와 중장년에게 아련한 추억이 되어준 「뽕」. 영화 「뽕2」에 출연한 조형기가 전 국민이 이 영화를 가장 많이 봤다고 호언했듯이 어떤 경로로든 대충 봤을 영화다. 「뽕3」, 이어 「뽕녀」, 「옹기골 뽕녀」, 「1996 뽕」 등 유사 시리즈에 아류작으로 앵두, 산딸기 시리즈도 쏟아졌었다.

뽕밭이 부활한다는 기사에 중년층 열독률이 높은 이유도 그 시절 인기 덕이다. 일품이 적게 들어 고령화 시대에 적합한 고소득 작물로 떠오르며 다시 뽕 치는 농가가 늘고 있다. 뽕 산업 ‘특구(特區)`에, ‘클러스터`에, ‘벤치마킹` 등 어려운 용어까지 섞여 나온다. 분위기는 예전과 150도 정도 다르다.

용도도 요즘은 실크보다 약용이나 뽕잎차, 뽕잎음료, 뽕잎국수, 뽕과자, 뽕잎아이스크림, 뽕잎빵 등 식품 재료로 인기다. 시설 하우스 재배까지 하는 뽕밭에서 자연산 러브호텔을 기대하기는 무리일 것 같다. 남녀가 손가락 걸던 상중지약(桑中之約)의 뽕밭은 아니지만 「2008 뽕」 만들자고 덤비는 혈기 방장한 감독이 나타날지 모르겠다. 뽕 시리즈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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