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서는 말 입술 두께 차이, 1500분의 1초 같은 근소한 차이가 대세를 가름하기도 한다. 프로야구에서 아웃인가 세이프인가는 평균 20㎝ 이내로 결정된다. 올림픽 100미터 경주에서 1, 2등 차이는 0.01초이지만 그 미세한 차이가 한 사람만 영웅으로 만든다.
그러나 2등도 얼마든지 멋진 등수다. 유방에게 통일 제국을 안겨준 채 ‘팽(烹)` 당하지 않고 낙향한 참모 장량과 같은 행복한 2인자도 많다.
2인자도 유형 나름이다. 사마의처럼 야욕을 숨기는 출세지향형 2인자, 제갈공명처럼 바른 세상 세우기를 작정한 2인자, 관우처럼 1인자와 인연이 특이한 또 다른 2인자도 있었다. 푸틴 러시아 총리는 사실상 자기가 만든 메드베데프 대통령을 제치고 여전히 1인자 행세를 한다.
그의 2등 브랜드는 영원한 2인자라는 별명에 맞게 1등 비위를 거스르지 않고 튀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남모르는 노력과 소통과 교감의 노하우도 축적하고 있었을 것이다. 반짝 1인자를 하고 감방으로 직행하는 허망한 1등보다 안전한 2등이 체질에 더 맞았을 수 있다.
한때 한나라당 2인자로 불린 이재오 최고위원이 미국행을 택했다. 만년 비주류, 한나라당의 특무상사(特務上士) 홍준표 의원은 원내대표에 뽑혀 20년 전 점쟁이의 2인자 예언이 적중했다며 좋아라 한다. 제1당 지위를 한나라당에 내준 통합민주당은 원내대표 경선에서 원혜영 의원을 ‘전략적`2인자로 골랐다.
2인자 노릇 잘하기는 2인자에 오른 만큼의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1인자의 그늘에서 노닥거리며 쉬어 가는 자리가 아니며, 거기서 1인자에 오르려면 꼴찌가 2등 되기보다 더한 에너지가 요구될지 모른다. 잘못 호가호위하다가는 삐끗 추락하기도 한다. 인생 변화구를 노려볼 만한 자리도 그 자리다. 2인자가 이래저래 관심을 끄는 이유다.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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