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밖]2등이 좋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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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밖]2등이 좋은 이유

  • 승인 2008-05-28 00:00
  • 신문게재 2008-05-29 21면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패스트 세컨드(Fast Second). 콘스탄티노스 마르키데스는 ‘재빠른 2등 전략`을 주창한다. 최초의 시장 진입자가 되지 말고 적절한 시점에 시장을 통합하라는 것. 적절한 시점이 최초인 경우는 드물다. 혁신은 시장을 창조하나 완성하지 못한다는 것으로 블루오션 전략과 다른 각도다.


장경동 중문침례교회 목사가 방송에 출연해 ‘1등과 2등은 입술 두께 차이`라는 주제로 짤막한 강연을 했다. 말 8마리가 경주를 벌여 2마리가 동시에 결승선을 통과했는데, 판정 결과 우승은 입술을 부르르 떤 말에 돌아갔다는 내용이다. 익히 아는 얘기도 장 목사 입으로 재가공하면 더 구수하다.

현실에서는 말 입술 두께 차이, 1500분의 1초 같은 근소한 차이가 대세를 가름하기도 한다. 프로야구에서 아웃인가 세이프인가는 평균 20㎝ 이내로 결정된다. 올림픽 100미터 경주에서 1, 2등 차이는 0.01초이지만 그 미세한 차이가 한 사람만 영웅으로 만든다.

그러나 2등도 얼마든지 멋진 등수다. 유방에게 통일 제국을 안겨준 채 ‘팽(烹)` 당하지 않고 낙향한 참모 장량과 같은 행복한 2인자도 많다.

2인자도 유형 나름이다. 사마의처럼 야욕을 숨기는 출세지향형 2인자, 제갈공명처럼 바른 세상 세우기를 작정한 2인자, 관우처럼 1인자와 인연이 특이한 또 다른 2인자도 있었다. 푸틴 러시아 총리는 사실상 자기가 만든 메드베데프 대통령을 제치고 여전히 1인자 행세를 한다.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중국 총리는 2인자 처세술 교본으로 꼽힌다. 이견을 뒤로하고 공감하는 분야부터 협력하는 것이 그 포인트. 우리 정치사에서도 2인자들이 명멸했다. 이기붕, 장세동과 박철언, 권노갑과 박지원이 그들이다.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 정권에서 2인자 노릇 한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도 있다.

그의 2등 브랜드는 영원한 2인자라는 별명에 맞게 1등 비위를 거스르지 않고 튀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남모르는 노력과 소통과 교감의 노하우도 축적하고 있었을 것이다. 반짝 1인자를 하고 감방으로 직행하는 허망한 1등보다 안전한 2등이 체질에 더 맞았을 수 있다.

한때 한나라당 2인자로 불린 이재오 최고위원이 미국행을 택했다. 만년 비주류, 한나라당의 특무상사(特務上士) 홍준표 의원은 원내대표에 뽑혀 20년 전 점쟁이의 2인자 예언이 적중했다며 좋아라 한다. 제1당 지위를 한나라당에 내준 통합민주당은 원내대표 경선에서 원혜영 의원을 ‘전략적`2인자로 골랐다.

2인자 노릇 잘하기는 2인자에 오른 만큼의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1인자의 그늘에서 노닥거리며 쉬어 가는 자리가 아니며, 거기서 1인자에 오르려면 꼴찌가 2등 되기보다 더한 에너지가 요구될지 모른다. 잘못 호가호위하다가는 삐끗 추락하기도 한다. 인생 변화구를 노려볼 만한 자리도 그 자리다. 2인자가 이래저래 관심을 끄는 이유다.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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