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명길 대전광역시 푸른도시사업단장 |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온실가스(CO2)도 빨아들여야 하고, 사람들이 필요한 산소(O2)도 내뿜어야하고, 할 일이 많은데...
지난겨울 어느 이름 모를 사람이 나무 밑동에 구멍을 내고 몹쓸 약을 집어넣은 후 밀봉을 해서 물길을 막아버렸기 때문이다.
아무리 열심히 양분을 빨아올려도 소용없다. 서서히 시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20여 년의 세월을 아낌없이 주고 살아왔는데,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리도 무참한 꼴을 당해야 하는가?
그 옛날 우리 조상들은 나무에도 혼이 있는 것으로 믿었다. 나무 한그루를 베어낼 때는 동네회의를 부쳐서 결정했고, 제사까지 지내면서 그 혼을 달래기도 했다.
그 나무가 마을을 지키는 느티나무일 때에는 더 말할 나위도 없었다. 그런데 대덕대로를 지키던 느티나무 열 그루는 영문도 모른 채 사약을 받고 시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나무에도 혼이 있을진대 그렇게 무참히 생명을 앗아간 사람을 그대로 용서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나무도 생명체인데 말을 못한다고 해서 어찌 노여움까지 없으랴. 저렇듯 온몸으로 우리를 꾸짖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데 말이다.
왜 독극물까지 넣어가며 나무를 고사시켜야했을까? 그 사람의 양심에 물어볼 뿐, 달리 치료할 길도 살려낼 길도 없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주차 통로를 마련하기 위해 쥐똥나무 수벽을 통째로 무너뜨려 짓밟아 버린 사람들도 있다.
간판을 가린다고 가로수 밑 껍질을 도려내어 말라죽게 한 사례들이 어제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심지어 개발사업을 하기 위해 나무를 몰래 자르고 불을 지르기도 한다고 하니, 참으로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나무순찰대, 나무병원에서 정성스레 나무를 가꾸고 치료한다고 한들 얼마나 효과가 있겠는가? 한켠에서 이렇듯 나무의 생명을 무참히 앗아가는 일들이 막무가내로 벌어지고 있는데 말이다.
오호 애재라, 오호 통재라. 나무에 대한 학대는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더 이상 나무들의 신음소리가 들리게 해서도, 비탈에 서서 울게 해서도 안 된다.
더 이상 사람들의 비양심적 손길에 의해 침묵을 지키는 나무들이 우리 대전에는 없어야 한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나무가 우리에게 주는 것은 너무 많다.
생명의 원천인 산소의 공급원이 나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지구 산소 소요량의 50%를 아마존 밀림 속 나무들이 제공한다고 한다.
그들이 없었다면 지금 지구는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상상하기 어렵지 않은 일이다.
뜨거운 여름날 서늘한 그늘이 되어주기도 하고, 가지가지에 새들의 둥지를 만들어 우리에게 ‘자연교향곡`을 들려주기도 한다.
어디 그뿐인가? 때로는 고사리 손으로 심는 희망의 꿈나무, 사랑으로 가득한 결혼 기념나무, 감사의 마음을 일깨우는 효나무, 스승의 나무가 되어주기도 한다.
고향집 추억 하나쯤 달려있을 살구나무, 복숭아나무도 있고, 신록의 봄, 선홍빛 융단을 도심 곳곳에 깔아놓는 영산홍도 있다.
이렇듯 많은 것을 주는 나무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주어야할까? 나무는 가꾸는 사람의 숨소리를 들으며, 기르는 사람의 정성을 먹고 자란다고 한다. 이런 나무들에게 우리도 이제 서러움과 노여움이 아닌 사랑과 희망을 듬뿍 주어야 한다.
받기만 할 것인가, 주어야 받을 수 있다. 그것이 우리가 나무 심고 가꾸기를 지속해야하는 이유이다. 그것이 우리 대전을 ‘숲속의 전원도시`로 만드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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