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밖]지방방송 끄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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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밖]지방방송 끄지 맙시다!

  • 승인 2008-05-22 00:00
  • 신문게재 2008-05-23 21면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의원이 환자의 상처를 빨아 그 고름을 입에 담는 것은 환자에게 혈육의 정을 느껴서가 아니라 이익을 보고 하는 일이다.” 말로만 지방을 챙기는 위정자를 보며 한비자(韓非子)를 떠올린다. 서울과 지방은 한 켤레 신발 같아야 한다. 지방은 밑창이 아니다. 어질(語質)이 중요하지만 어종(語種)은 더욱 중요하다.


지방방송은 꺼.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중앙방송 안 들리니 지방방송 끄라는 말을 옆구리에 달고 살았다. 이 말에 서울 이데올로기와 지방의 모든 것을 연상시키는 중심지향성 환유(換喩)와 전체주의적 은유가 들어 있다.

과거 논쟁사에 호락논쟁(湖洛論爭)이 있었다. 충청도의 호서(湖西), 한강의 낙수(洛水)에서 따서 호락이다. 인성과 물성이 같은가 다른가에 대한 논쟁의 중심이 서울과 충청도였다. 이 논쟁은 동아시아 철학사를 풍미했다. 충청권이 수도권-비수도권 논쟁의 한가운데 있지만, 이념적으로 지방은 그때만 못하다는 생각이다.

지방방송 끄라는 횡포가 우선 그렇다. 국가균형발전 반대파 인사가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이 된 것도 지방방송에 귀 막고 게걸음, 뒷걸음치겠다는 발상이다. 지방사람이 나라 걱정하면 내 말뜻이나 알고 지방방송 하느냐는 투로 시큰둥하다. 어쩔 때는 지방방송 스튜디오로 재떨이라도 날아들 것 같아 살벌하다.

이 같은 지방방송 홀대의 뿌리를 좌식 문화에서도 찾는다. 술잔 들고 아무 테이블이나 찾아가 담소하는 서양식 입식문화가 정착 못한 탓을 하면서, 또 서서히 나아진다고도 한다. 지방방송 해봐. 육조거리 고관을 상대하는 주인이 거지 맞돈 노리고 술국을 나르듯 너그러운 자리가 늘고는 있다. 그러나 주류(主流)는 아니다.

여기저기서 지방방송 끄라고 강요당한다. 술자리에서 술과 술병에 관한 ‘주권`과 ‘병권`은 중앙집권주의다. 옆사람과 소곤거리면 중앙방송 안 들린다고 알아서 군기 잡는 사람이 꼭 있다. 시선은 중앙방송 마이크를 보고 귀는 쫑긋쫑긋 세워야 하며 잡기장을 꺼내 적는 시늉까지 한다. 갈비집 계모임에서도 집중도가 떨어지면 화살은 지방방송에 쏠린다. 지방이 떠들면 안 된다는 권력의 강박에 갇힌 것이다.

이 도도한 한국적 흐름을 깨고,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모임에서 주위가 시끄러우면 지방방송 끄라고 말하지만, 지방방송이 시끄러워야 오히려 중앙이 힘을 받는다”고 했다. 지방분권 촉진 특별법 추진 토론회 자리이긴 했다. 여하튼 뉴스 요건에 딱 부합되는 신기성(新奇性) 발언이 방송 타는 동안, 지방 흔들기는 그치지 않았다.

지방방송 시끄럽게 틀어도 좋아요. 중앙방송 권력자가 선심 써도 서울의 문화적 헤게모니 지형을 바꾸기 전엔 지방방송이 원활할 턱이 없다. 지방도, 지방방송은 무례하다는 길들여진 무력감(learned helplessness)을 벗고, “지방방송 틉시다!”, “지방방송 좀 듣자고요!”라고 ‘쪽팔려도` 소리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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