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대전시무형문화재 제16호로 지정된 양 씨는 “농경생활이 주였던 과거 짚은 우리 생활전반에 걸쳐 없는 곳이 없었다”면서 “초가지붕은 물론 짚신, 삼태기, 둥구미, 멍석, 짚 가방 등 생활용품과 농사용품 등이 모두 짚으로 만들어졌는데 플라스틱 제품이 쏟아져 나옴으로써 사람의 손에서 멀어져갔다”고 말했다.
올해 우리 나이로 일흔 여섯인 그가 짚으로 물건을 만들기 시작한 것도 60여 년 전.
“벼이삭을 털고 난 후 줄기를 말려 만든 짚으로 사랑방에 모여 앉아 짚신과 멍석 등을 삼으며 세상사는 이야기와 솜씨자랑을 했다”고 회고한 양 씨는 짚공예에 남다른 매력을 느껴 플라스틱 제품이 나오기 시작한 후에도 볏짚과 풀을 이용해 현대적 감각을 살린 예술품들을 만들어오고 있다.
부인 박갑춘 씨(77)와 함께 사는 대전시 동구 낭월동 방 2칸짜리 그의 집은 그동안 양 씨가 만든 400여점의 짚공예품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이 작품들은 금산인삼종합전시관에 7년 동안 전시돼 있던 것으로 작품을 철수하면서 마땅한 전시 공간을 찾지 못해 집에 쌓아 놓고 있는데 금산인삼엑스포 당시 눈길을 끌었던 짚으로 만든 대형 인삼도 방 한쪽 벽을 차지하고 있다.
수 백점의 작품들을 제대로 진열하지 못한 채 쌓아 놓는 게 안타깝다는 양 씨는 “매년 대전시청에서 전시회를 갖고 있긴 하지만 별도의 전시실이나 개인 박물관을 갖고 손끝에 힘이 남아 있는 순간까지 작품을 만드는 게 꿈”이라고 희망을 이야기했다.
먼지가 날린다는 아내의 잔소리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하루 7~8시간씩 짚공예에 열을 올리고 있는 양 씨는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부터 공을 만드는 재미에 푹 빠졌다는데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 때 운동장에서 굴렁쇠를 굴렸던 것처럼 월드컵 때 짚으로 만든 공을 그라운드에서 굴려봤으면 하는 바람으로 직경 70Cm 짚공을 만들었는데 꿈을 이루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그 당시 양 씨가 만든 짚공은 현재 짚풀생활사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우리나라 첫 초고장(草藁匠)으로서 손맥이 끊기면 전통 또한 끊긴다는 생각으로 지금도 서울, 무주, 금산, 논산 등에서 강의를 계속하고 있는 양 씨는 “과거에는 짚공예품의 쓰임새가 다양했지만 급격한 산업발달로 기술을 배우려는 사람이 없어 아름다운 우리 전통의 맥이 끊어질까 가장 걱정”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호기심에 배우려 왔다가도 2~3일만 볏짚을 만지면 손끝이 갈라지고 터져 그만두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전통적 기법에 독특한 창의성을 가미한 그의 기술은 현재 딸(인화씨)이 전수 받고 있는데 양 씨는 “다른 사람들이 크게 알아주지도 않고 생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을 가르치는 것이 못내 미안하다”면서도 “전국대회 입상 등 솜씨가 수준급”이라고 자랑한다.
자신이 쓸 볏짚을 매년 추수 후 잘 말려 가져다주는 친척 덕분에 현재까지는 작업에 어려움이 없지만 “짚이 우리 손에서 멀어지듯 짚공예도 손맥이 끊어지지 않겠느냐”는 양 씨는 초고공예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언제든 찾아오라며 앙상한 손으로 다시 볏짚을 집어 든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