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정희 송강중 교사 |
“응, 안나, 그래도 고맙지 않아 김치가 떨어지니까.” “그래 고맙다.”
“내가 엄마 주려고 리어카에서 파는 예쁜 브로치 하나 샀어.”라고 말하며 내 가슴에 브로치를 달아주었다. 나는 “예쁘다. 고마워. 우리 딸”이라고 말하며 물었다. 그런데 이건 “어버이날 선물이니 아님 스승의 날 선물이니?”라고 묻자, “엄니한데 주려고 리어카에서 산건데 선물은 무슨 선물”하며 수줍게 웃고 만다.
수줍은 제자아이의 미소를 보자 20년 전 교실 풍경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 당시에는 겸임교사 제도가 없었다. 그래서 난 음악교사임에도 불구하고 상치과목으로 미술교과 수업을 하였다. 처음에는 미술시간이 무서웠다. 아이들이 질문할까봐 무서웠고, 수업시간에 그린 그림을 한번 보아달라고 할까봐 무서웠다. 불안한 마음으로 도저히 이대로는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난 3년 동안 취미활동이라고 말하기엔 지나치리만큼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했었다. 일주일에 미술, 서예와 수묵을 한 번씩 사사 받으며 오로지 미술선생님으로 새롭게 태어나려 노력했다. 열심히 노력했던 시간들이 있었기에 난 미술대전에서 2번의 입상 기회도 있었다.
이렇게 7딸들과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학기중에는 방과후 매일 2~3시간씩 그림을 그리고, 방학 때에는 아침부터 그림 그리다 배가 고파오면 점심 도시락을 모아 비빔밥을 만들어 먹으며 3년 동안 스케치북에 그린 그림보다 더 아름답고 행복한 그림을 스케치해 나갔고, 이런 미술시간 덕분에 학교생활은 더 신바람이 났고, 7딸들은 졸업을 했다.
그리고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 그 아이들은 미술대학 강사, 식품디자이너, 의상 디자이너가 되어 누구보다 열심히 사는 딸로 다시 내게 다가왔다.
김치를 빙자하여 한 달에 2~3번씩 집에 들르는 딸은 이제 초등학교 선생님이다. 제자라기보다는 친구가 되어버린 내 딸은 “난 엄마처럼 열심히 노력하는 교사가 될 거야.” 또 “엄마보다 더 멋진 교사가 될거야.”라며 그 힘의 원천은 내가 담근 김치란다. 그 말끝에 난 우리학교의 힘은 “신규교사야.”라고 말했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 천체관측 동아리, 창의력을 깨우는 마인드맵 수업, 장애우 친구 3년 담임하기, 사람 만드는 사자소학, 원어민과 함께하는 영어캠프"라고 이야기하며 난 중고등학교 5년 동안 음악을 가르쳐주셨던 송경애 선생님 생각이 났다.
아마 지금도 점심시간에는 합창연습을 하고 점심식사는 적당히 드시고 계실 거다. 나의 선생님이 내게 하셨듯이, 또 우리 학교선생님들이 아이들과 함께 할 때 신뢰할 수 있는 공교육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가르친다는 것은 희망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나의 제자의 미소에서 본 기분 좋은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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