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훈 충남대 관현악과 교수 |
쉽고 간단히 말해서 성은 자연의 소리이고 음은 기물에 까지 적용된 제도화된 소리이고 악이란 소리로써 조화를 체득한 것을 말한다. 고대의 악은 하늘을 본떠서 만든 춤추며 노래하는 것으로서, 땅을 본떠서 제정한 예(禮)와 짝을 이루었다. 이것은 하늘과 땅의 이치를 깨닫고 실천하는 품격있는 생활상을 제시한다.
오늘날 음악은 어떠하며 어느 길(道)로 가고있는 것일까. 음악은 인간의 맥박이고 숨결이기 때문에 삶의 변화와 같이한다. 때로는 음악이 삶을 이끌어 가기도 하고 거꾸로 삶이 음악에 투영되기도 한다. 음악이 단순한 것 명료한 것으로부터 복잡하고 미묘한것 까지 변화되는 것 역시 인간의 성장과 함께 사회적 역할의 확대와 궤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그 다양한 음악은 인간의 근원적 감각에서부터 고차원적 심미에 이르기까지 즉시적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모든 소리의 파동은 생물의 생명활동에 맞닿는다는 사실이다.
음악의 길은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본다. 하나는 개인적 측면에서 왜 자신을 고상하고 품위있고 덕망 높은 인격자로 승화시켜야 하느냐는 것이고, 사회적 측면에서는 어떻게 사회적 기능을 다 하느냐 하는 것이다. 만약에 한 개인이 완전한 독립체여서 다른 생명체와 관련성을 고려할 필요가 없다면 그 사람이 마치 금수와 같든 소인배이든 군자적 풍모를 지녔든 어떠한 관심도 기울일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나쁜 음악을 듣고 심신을 파괴하든 좋은 음악을 듣고 생명력을 고양시키든 다른 생명체에 영향을 끼치지 않기 때문에 문제될게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한 개인이 가정과 사회 그리고 국가로 연결된 하나의 생명계에 존재하는 일부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에 바른 음악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음악은 바른 길을 잊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음악의 진정한 본질을 애써 외면하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개인적으로 복잡한 사회생활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감각적 음향과 지나치게 큰 음량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문제는 그와 같은 과도한 반복적인 행위가 정신적 혼란과 신체적 불균형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비정상적 사회환경이다. 지금 사회의 보편적 관심은 무엇보다도 경제적 가치이다. 내용과 형식의 조화를 통한 미적 정서적 효용성 보다는 형식상 화려하고 큰 규모를 통한 감각적 효율성이 우선한다. 적정 계층을 위한 전문적 프로그램 구성 보다는 다중을 위한 흥행 위주의 프로그램 구성이다.
이것은 상당한 위험을 내포한다. 다중이 동일시 되고 획일화된 다중은 사회성 결핍으로 이어진다. 매사에 진중한 판단 보다는 즉흥적이고 충동적 이다. 종국에는 개인 뿐 아니라 사회적 부조화에 떨어진다.
세상은 항상 살아 움직인다. 새 시대를 이끌어갈 길을 음악에서 찾아보자 옛글의 뜻을 깊이 성찰해 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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