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맹자 읽는 소리 와글와글
-기숙 학생 지금까지 5백 명 배출
-규율 엄격, 휴대전화 없고 주1회 인터넷사용만 허용
논어(論語)에는 사물에 대한 궁리가 참 많다.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그렇다. 그 중 하나가 온고지신(溫故知新). 옛 것을 익히고 새 것을 알면 남의 스승노릇을 할 수 있다는 말 아닌가. 참 지혜로운 저술 속 구절이 아닐 수 없다.
▲온지당 |
이곳은 뜻 그대로 온고지신의 실천 전당이다. 당호가 온지당이니 온고지신의 실천정신이 깃들어 있다는 것쯤은 누구나 금 새 짐작할 만하다.
몇 해 전 이곳 온지당을 세울 때 지은 상량문(上樑文)의 내용을 살펴보면 ‘온지당’의 실천정신이 어떠한 것인지 잘 엿보인다.
상량문 내용 중 두어 구절을 옮기면 이렇다.
‘학문을 가르치고 배우는 데에는 반드시 공동으로 거숙(居宿)하는 집이 있어야 하니 어울려 학문과 덕행을 쌓으면 절차탁마(切磋琢磨)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리다.
아울러 집이 아름다워 우러러 볼만한 데다 산수가 빼어나 발길을 멈추고 그 빼어남을 바라보게 되는 곳에 있는 것이 온지당이다.
상량문만 보다라도 온지당이 어떤 곳인지 대략 알아차릴 만하다.
이곳은 학문과 덕행의 공간이며 신구(新舊), 동서(東西), 남녀(男女)가 조화롭게 공존한다. 공존은 온지당이 연구 개발하려는 지향점이기도 하다.
서설(序說)이 좀 길다. 어쩌겠는가. 온고지신이라니, 온지당의 기본정신을 살피고 가는 수고는 감수해야 하지 않겠는가 싶다.
온지당, 그곳 가는 길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배반이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아 좋다. 사방 팔방 풍광이 제법 뛰어나다.
정작 온지당은 계룡산 앞들을 깔고 앉았으니 그 또한 자연풍광을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온지당은 여러모로 이채롭다. 우선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서도 한국적 미감을 더하고 있는 전통한옥대문부터 그렇다.
한옥대문을 들어서자 신구의 조화가 다시 이채를 띤다. 전통한옥과 미니멀리즘 풍 건축물.
둘의 조화는 마치 온지당 정신의 상징인 듯하다.
이곳에 들어서 다시 온고지신을 생각하는데 한옥처마를 타고 흐르는 맑은 풍경(風磬)소리가 방문객의 발길을 멎게 한다. 과연 저 작은 쇠 종소리는 낯선 내방객에게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 풍경소리에 귀를 씻으니 세상의 오만과 방종, 나태가 보이는 듯하다.
풍경소리에 산란해진 마음을 추스르자 이곳 당주(堂主)가 일행을 맞는다. 온지당의 당주. 바로 이숙희 충남대 한문학과 교수다. 그는 한문학을 통한 정신·문화 운동에 대한 열정이 참으로 대단하다.
차향에 취한 것도 잠시, 그는 자신의 학문과 정신·문화 운동에 대한 열정 꾸러미를 풀어놓는다.
온지당의 당주답게 그는 통섭을 무엇보다 강조한다.
통섭이라.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연결하고자 하는 지식의 통합 아닌가. 온고지신과도 일맥 통하는 개념일 것이다. 이 교수는 온지당의 당주로서 이렇게 말한다.
▲온지당 학생과 온지당 가는길 |
온지당은 지난 3월 대전지역독서클럽 ‘100북스클럽’과 연구공동체 ‘수유+너머’ 주최로 학술문화행사를 가졌는데 이 때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와 서울대 이종상 교수의 초청강연내용이 바로 통섭이었다.
지난달에는 ‘이화에 월백하고’란 제목의 문화행사가 열렸는데 공연 내용을 보니 퓨전타악, 설장고, 심청가, 난봉가, 바흐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파가니니의 24개 카프리스 등이다.
이날 열린 공연 또한 문화적 통섭이며 온지당이 지향하는 동서의 조화란 점에서 무엇보다 큰 의미를 갖는다.
온지당에서 열리는 이러한 학술 및 문화예술 행사에는 3백여 명의 시민들이 참가하는데 밤이 늦도록 행사 열기가 뜨겁다 한다.
앞서 밝힌 것처럼 온지당은 한문학 전문 연구기관이자 교육기관이다. 이곳은 한문번역기관 역할도 담당한다. 문화예술 행사 역시 온지당의 설립 목적에 따라 열려 문화예술의 전당 역할도 크게 기대할 만한 곳이다.
1994년, 대전광역시 봉명동에서 개원한 온지당은 지난 2001년 현재 장소로 이전, 단기방학교육과정과 장기교육과정을 개설 운영하고 있는데 올 2월 사단법인 전통문화국역연구원으로 거듭나 앞으로 보다 폭 넓게 활동해 나갈 계획이란 것이 이 교수의 남편, 장정민 이사장(유승기업 대표이사)의 말이다.
매년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이면 단기교육과정이 열리는 온지당은 온종일 성독(聲讀)하는 소리로 가득한데 그 풍경이 무척이나 정겹다.
단기교육과정에서는 4주간 사서(논어, 맹자, 대학, 중용) 습득 암송 교육이 이뤄지는데 주로 30명 내외의 전공학과 대학생들이 서생들이다.
장기교육과정은 논어, 맹자, 대학, 중용 등 사서와 시경, 서경, 주역 등 삼경을 심화학습 암송 연구하는 과정으로 아당(峨堂) 이성우 선생이 주관한다. 장기교육과정 생은 대학원생과 대학원 졸업 한문학 전공자들로 보통 6~7명 정도다. 단기교육과정, 장기교육과정 모두 기숙교육이다.
온지당에서 학생들의 일과는 일반인들의 생각과는 영 다르다. 어떤 면에서는 혹독(?)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단기교육과정 학생들은 보통 새벽 5시30분에 일어나 밤 12시에 취침한다. 그들은 공동예습, 공동수업 외에 논어를 하루 40번씩 암송한다. 그러니 단기교육과정이 있을 때면 온지당은 하루 종일 책 읽는 소리로 와글와글한다.
온지당은 규정이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단기교육과정 학생들의 경우 외출이 안 되고 휴대전화 사용도 금지되며 인터넷 사용은 주당 1회 허용되는 것이 고작이다. 지금까지 한 달 이상 온지당에서 숙식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전국적으로 5백 명이 넘는다.
이처럼 선비문화의 유전 인자가 생생하게 살아 전해지고 있는 온지당. 온지당은 책을 단순히 읽거나 외기만 하는 기문지학(記問之學)을 경계한다. 실천적 덕행을 중시한다는 얘기다.
이숙희 교수는 한문학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온지당 당주 이숙희 충남대교수 |
온지당, 그곳의 한문학 연구 교육, 문화예술 진흥 활동 등 실천궁행(實踐躬行)이 많은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를 기대해 본다.
/이선형 월간충청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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