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조수미도 음대시절 어려웠던 ‘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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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조수미도 음대시절 어려웠던 ‘시창’

  • 승인 2008-05-15 00:00
  • 이선형 기자이선형 기자
‘신이 내린 목소리.’

소프라노 조수미에 대한 마에스트로 카라얀의 평이다. 이제는 어쩐지 진부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벌써 20여 년이 지난 평가이니 그럴 만도 하지 않겠는가.

‘일세기에 한 두 명 나오기도 어려운 목소리를 가진 가수’라고 밝힌 주빈 메타의 평가도 이제 특별한 감동을 전하지 못한다.

조수미. 그는 오페라무대와 콘서트를 통해 늘 전세계 음악 팬들을 매료시키고 진한 감동을 선사하는 세계 최고의 아티스트다.

월간충청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가 ‘내 안의 조수미’에 대해 말한다.

▲신이내린 목소리의 주인공, 소프라노 조수미
▲신이내린 목소리의 주인공, 소프라노 조수미


-오는 25일 대전문화예술의전당에서 리사이틀을 갖습니다. 지역 음악 팬들을 위해 조수미의 음악세계에 대해 먼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조수미가 탐구하는 음악에 대해서 말입니다.

△저에게 음악은 늘 새로운 도전입니다. 어떤 음악가도 자신의 연주에 대해 감동을 느끼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저는 노래를 부르는 동안, 그 노래에 동화되어 관객을 의식하지 않고 표현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담아냅니다.
음악은 끊임없는 원천적 요소(Source)에 대한 탐구가 있어야 합니다. 모든 음악은 그 곡을 작곡한 사람의 의도가 살아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관객은 최상의 공연을 보길 희망하고 그 최상의 공연은 단순히 노래를 잘 전달하는 것 이상의 다른 요소를 필요로 합니다. 즉 관객과의 호흡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요소들은 끊임없는 공부와 연구를 통해 이뤄지는데, 지난 20여 년 간, 저는 세계의 크고 작은 무대에서 관객들과 호흡해 오는 과정에서 그러한 노력을 계속해 왔습니다. 이런 노력들이 지금의 조수미를 만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관객과의 호흡을 강조하고 계신데 오케스트라 반주와 피아노반주에서 차이가 있지 않을까요.

△공연기획 의도에 따라 오케스트라 반주를 이용하게 되기도 하고 때로는 피아노 반주만으로 하는 리사이틀 공연을 하게 됩니다.
오케스트라 반주에 의한 공연은 오케스트라의 화려한 음색과 저의 목소리를 하나로 만드는 과정을 관객에게 전달하려고 노력하고, 피아노 공연의 경우 반주자와의 하나되는 과정을 통하여 관객과 호흡하는데 저는 피아노 반주에 의한 공연이 관객과 훨씬 쉽게 가까워지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지난 20여 년 조수미 음악은 여러 전환점이 있었는데 소개해주시죠.

△이태리의 트리에스테에 있는 베르디 극장에서 ‘질다’역으로 데뷔한 이후 마에스트로 카라얀에게 발탁되어 오디션을 받고 그 분과 녹음과 오페라작업을 했습니다.

이 후 20여 년 동안 세계 각국의 오페라 하우스와 콘서트 홀에서 공연을 하고 명 지휘자인 게오르그 솔티, 주빈 메타, 리처드 보닝, 켄트 나가노 등과 작업을 하면서 꿈을 이루어 나가는 도전이 있었습니다.
2000년에는 ‘온리 러브’라는 크로스 오버에도 도전해서 100만장 판매라는 성과를 이루기도 했고요.
이후 오펜바하의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세 여주인공 역을 다 맡아 공연하고 영화음악 음반 등 새로운 시도를 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제 2008년은 제가 구체적으로 다음 20년을 만들어가는 구심점이 되는 해입니다. 새로 계약한 유니버설의 음반 발매나 마이어베어의 ‘디노라’ 등의 오페라에 도전하게 됩니다. 앞으로도 지난 21년을 이어온 저의 도전은 멈추지 않을 겁니다.

-카라얀과의 음악적 교감에 있어서 기억나는 일들이 많을 텐데요.

△마에스트로(Maestro) 카라얀을 만나 오디션 하던 일과 처음으로 국제무대에 서던 일은 제 인생을 통째로 바꾸어 놓은 정말 중요한 일이었다고 기억합니다.
그 분을 처음 뵀을 때 마치 어린 시절 만화에 나오는 자상한 백발도사를 만나는 느낌이었습니다. 저의 음악 여정은 그 분의 모습을 닮아 가려고 노력하는 과정인지도 모르겠어요.


-조수미의 공연을 보면 그가 몰입의 화신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고들 하는데 어떻습니까.

△무대에 서는 것은 집중력을 필요로 합니다. 어떤 인물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의 성과는 얼마나 그 인물에 집중해서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느냐에 좌우되기도 합니다.
제가 오페라 무대에 서면서, 표독한 마음과 자식을 유괴당한 슬픔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야 하는 밤의 여왕 역과 지고 지순한 사랑의 마음을 가진 가녀린 소녀 질다역, 그리고 사랑으로 인해 미쳐버리기까지 하는 비련의 주인공 루치아역까지 모두 소화해 낼 수 있었던 것은 강한 감정몰입이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콘서트 역시 곡의 표현을 위한 감정몰입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음악에서도 경쟁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인데 그를 둘러싼 에피소드를 몇 가지 들려주시겠습니까.

△경쟁이란 것이 없으면 사람이 무사안일 해지기 십상이지만 경쟁이 아니라 남을 깎아 내리는 것이라면 문제가 됩니다.
산타 체칠리아 유학시절 일본인 친구가 있었습니다. 평소엔 드라이브도 하고 공부도 하며 가깝게 지내는 사이였지만 도통 모르는 노래가 없을 정도로 많은 레파토리를 가지고 있었어요. 그 것을 볼 때마다 제 맘속에 불덩이가 치미는 적이 많다고 어머니께 편지로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어머니는 답장에서 격려도 해주셨지만 한 편으로는 염려가 되셨는지 제가 항상 아름다운 마음으로 노래하길 바란다고 써 주셨습니다. 저도 콩쿨이라는 것에 나가서 경쟁해 보았지만 경쟁을 통해 제 스스로가 성장하는 것은 좋지만 그로 인해 사람의 마음속에 증오나 질투가 자리 잡는다면 노래에는 오히려 역효과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노래는 상처받은 사람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보듬어 주는 것인데 노래하는 사람의 마음에 증오심이나 질투심이 가득하면 안되겠지요.

-음악평론가들의 비평 중 기억에 남을 만한 것들이 있을 법한데요.

△저를 음악의 혁명가라고 했던 비평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태리의 스칼라에서 욤멜리라는 옛 작곡가의 오페라를 올린 뒤였습니다. 오페라의 종주국 이태리에서도 잘 상연되지 않은 작품을 제가 올리게 되어 그랬다고 봅니다.
- 비평이라는 것이 워낙 주관적이어서 개개인의 차가 있지만 간혹 고의적으로 저를 깎아 내리고자 하는 비평이 지면에 실릴 때가 있긴 합니다. 그런 리뷰를 보아도 크게 신경 쓰지는 않습니다. 농담이지만 그런 리뷰가 난 신문으로 생선을 싸 두거나 하지요.

-음악적 도전과 성과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지금의 제가 있기까지 몇 단계의 도전을 경험했습니다. 그 첫 번째는 성악에 대해 공부하던 시절 제 자신을 극복하는 것이었어요. 유학시절, 저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최대한 많은 것을 배우려고 노력하면서 끊임없이 제 안의 조수미와 싸우기를 거듭했습니다.
어느 정도 음악을 이해하고 세계무대에 서는 동안, 저보다 앞서 갔던 선배 성악가들의 음악적 성취를 보면서 자극받고 더욱 노력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어요.
세계의 정상급 성악가로 많은 활동을 하면서는 새로운 음악에 대한 폭을 넓히기 위하여 노력했습니다.
20년 이상 세계 무대에서 활동한 현시점에서는 지금까지 보다 더욱 가치 있는 도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한 다양한 종류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 20년 아니 30년을 내다보며, 음악을 통해 우리 사회의 문화 리더로서 가치 있는 기여를 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최근 청소년들의 문화예술 교육이 진학을 위한 교육환경에 밀려 학교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우려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우리의 청소년들에게 제가 조금이나마 음악적인 영감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하고자 합니다.

-활동 스케줄을 보면 매년 국내 공연을 빠트리지 않고 있습니다. 특별한 배경이 있는지요.

△매년 정기적으로 2회 정도 한국에서 공연하는 것을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보통 4~5월에 전반기 공연을, 그리고 10월 또는 12월에 후반기 공연을 합니다.
1회씩 서울공연을 하고 이어서 지방공연을 연결하여 투어 형식의 공연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정기적인 공연은 공연일정의 예측이 가능해 공연장을 찾는 분들께 유용한 것이 사실입니다. 저도 공연을 계획하는데 편하고 좋습니다.

-요즘 새롭게 잡고 있는 음악활동 계획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요.

△당분간 오페라보다는 콘서트에 집중을 하는 계획이 잡혀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해 보지 못한 작품이나 하고 싶었던 작품으로 오페라 무대에 설 계획이 있습니다.
특히 세계적으로 많이 공연되지 않는 작품들 중에서 저의 목소리에 맞는 오페라가 있다면 꼭 참여할 계획입니다. 내년도에 예정되어 있는 오페라 ‘디노라’가 그러한 오페라들 중 하나입니다.
3~4년 전 공연했던 러시아 오페라 ‘황금 닭’을 통하여 러시아 오페라의 진수를 느꼈는데, 기회가 된다면 그런 좋은 작품을 한국에 소개하고 싶기도 합니다.
어린이나 청소년들에게 클래식을 쉽고 재미있게 접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해보고 싶은 의욕도 있습니다.

-음반계획은 어떻게 잡혀있는지요.

△제가 2007년에 전속으로 계약한 유니버설과는 세계의 민요나 전래곡을 담은 음반을 출시할 예정이고 이후에도 러시아나 프랑스 음악을 담은 음반을 내보고 싶은 욕심도 있습니다.

-음악의 조기교육에 대해 여러 의견을 갖고 계실 텐데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한국에 있는 분들께 영재교육이나 조기교육의 열풍 이야기를 듣곤 합니다. 예술분야의 조기교육은 필요한 면도 있고 불필요한 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어린 시절에 접하는 음악분야가 악기라면 그 때 기본기를 다지도록 요구받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바이올린의 경우 대부분 어린 시절부터 접하지 않으면 어렵다고 들 합니다. 성악의 경우는 좀 달라서, 변성기를 거치고 났을 때 소리가 더욱 중요합니다. 따라서 조금 늦게 시작하더라도 시기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조기영재교육 열풍 이유는 자녀의 가능성을 파악해 보고 싶은 부모님들의 조급성 때문 아닐까 합니다. 그러한 부모님들의 마음도 이해해야 하겠지만 어린이들에게는 그들이 음악이라는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주요 레파토리와 선곡 배경에 대해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제 목소리는 화려한 성격의 콜로라투라인데 최근에는 콜로라투라의 영역을 넘어서 예전엔 부르지 못했던 드라마틱한 곡도 한 두 곡씩 선곡하게 되고 조심스럽게 레파토리도 확장해 가고 있습니다.
2007년 10월에 프랑스 툴롱에서 제가 꼭 하고 싶었던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렛타역을 처음 무대에서 전곡 불렀어요. 그 역할은 1막은 제 목소리에 맞는 콜로라투라지만 3막으로 가면 드라마틱해지기 때문에 목소리를 상하기가 쉽죠. 실제로도 자기 목소리에 맞지 않게 비올렛타나 노르마 역에 도전했다가 목을 상해버린 성악가들도 본 적이 있고요. 조심스런 도전이었는데 반응이 좋아서 제 스스로의 모토인 ‘아름다운 도전’을 이룬 듯해 기뻤습니다.
그 외에 도니제티의 ‘루치아’나 벨리니의 ‘몽유병의 여인’, ‘청교도’, 오펜바흐의 ‘호프만의 이야기’의 올랭피아 역 등이 제 레파토리인데 이 레파토리로 많은 연주를 해서인지 당분간은 오페라보다는 콘서트 위주의 공연을 하면서 뭔가 새로운 도전이 될 만한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 싶어요.
그리고 ‘밤의 여왕’역은 지금도 제게 요청이 빈번하지만 목소리를 아껴두라는 카라얀의 충고도 있었고 제 스스로도 너무 많이 했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사양하고 싶어요.

-연습을 둘러싼 에피소드도 많을 텐데요.

△저의 전문 반주자이자 세계적으로 유명한 성악가들의 반주를 도맡아 해 주는 빈센초 스칼레라(Vincenzo Scalera)씨는 하루에 2시간 이상 손 운동을 하지 않으면 불안하다고 하더군요.
성악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이 악기이다 보니 항상 몸의 상태를 건강하게 유지하며 최상의 컨디션에서 노래를 부르기 위하여 항상 연습을 게을리 할 수 없습니다.
연습은 보통 발성 연습과 새로운 음악의 습득 두 가지 패턴으로 하게 되는데 늘 소리를 내어보고 그 소리의 질을 최고로 유지하기 위하여 발성연습을 규칙적으로 합니다. 저는 하루에 2시간 정도 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새로운 곡을 연습하고 그 곡을 자신의 레파토리로 만들기 위한 연습 역시 자신의 발전을 위해 매우 중요한 연습의 하나입니다.
여러 나라, 여러 장소에서 연습을 하다 보면 직접 피아노를 치면서 연습하는 경우가 많은데, 피아노의 피치가 잘 맞지 않아 연습하는데 지장을 받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저는 흔히 이야기하는 절대 음감을 가지고 있는데, 제소리의 피치가 피아노의 피치와 다르면 연습에 지장을 받게 됩니다.
대부분 제가 내는 소리가 더 정확해 조율이 잘 되어 있지 않으면 피아노를 이용하지 않고 혼자 연습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절대음감에 얽힌 이야기도 많지 않은지요.

△서울대 음대에 들어갔을 때 과목 중에 ‘시창과 청음’이라는 과목이 있었습니다. 시창은 말 그대로 초견의 악보를 보고 부르는 음감 연습이고 청음은 그 음이 가진 고유의 피치에 예민하게 귀를 단련하는 과정인데, 청음엔 별 어려움이 없었지만 시창에는 애를 먹었습니다.
악보를 읽는 법 중에 <이동 도>법이라는 것이 있는데 조(調)가 바뀔 때마다 으뜸음의 자리가 바뀌는 것이죠. G장조는 ‘솔’이 ‘도’가 되는 것인데 제 귀에는 ‘솔’은 ‘솔’로만 들리지 도무지 ‘솔’을 ‘도’로 듣고 부를 수가 없더라고요.
귀로 먼저 들은 음을 ‘이동 도’법으로 바꿔 불러야 하니 머릿속은 완전 뒤죽박죽이 되었던 거죠.
또 외스트만이라는 지휘자와 <마술피리>를 녹음할 때 모차르트 시대의 악기를 복원한 형태의 원전연주로 녹음했는데 그 시대의 악기는 악보에 표기된 음이 지금의 음보다는 반음이 낮아 처음엔 고음걱정을 덜겠구나 했는데 막상 녹음을 해보니 반음 낮은 악기에서 나오는 음이 제 귀에는 낯설게 들렸습니다. 하지만 절대 음감을 가진 덕에 처음 보는 곡이나 멜로디가 복잡한 곡의 악보를 들여다봐도 금방 익히는 편입니다.

-국내 팬들의 음악적 열정에 대해 어떻게 느끼십니까.

△한국 관객들의 박수소리는 그 어느 나라보다도 열정적입니다. 또한 클래식 음악의 저변도 꽤 넓어져 클래식이나 오페라 애호가가 상당히 많아졌습니다.
일전에 음악을 좋아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잠시 들었던 기회가 있었는데 그 분들의 음악적 지식이 꽤 깊이 있어서 많이 놀랐습니다.
저를 사랑해 주시는 팬들도 미니홈피나 사이트에 제 공연을 보시고 의견을 남겨 주실 때가 있는데 그 분들의 지적이 어떤 평론가의 지적보다 더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국내 팬들과의 온 오프라인 교류는 주로 어떤 형태로 이뤄지는지요.

최근 들어 ‘미니홈피’에 재미를 붙였습니다. 사실 저는 컴퓨터나 IT 분야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주변에서 저를 도와주는 친구들로부터 미니홈피를 배워 지금은 나름대로 저의 내면적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하루에도 많은 분들이 찾아 주셔서 쪽지나 방명록 글을 남겨주시는데 틈틈이 그 분들의 글을 빠짐없이 읽고 힘을 얻고 있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제 사인을 받기 위해 기다려 주시는 많은 분들도 제겐 큰 힘이 되지요.

-한국 클래식 음악의 세계적 경쟁력은 어떻다고 보십니까.
△제가 유학생활을 시작했을 당시만 해도 유학이나 해외여행이라는 것에 대해 그다지 자유롭지 못한 시절이라 외국을 나가게 될 기회가 많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 시절엔 우리나라의 음악인이 외국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 있지 않던 터라 ‘정 트리오’는 한국인의 큰 자부심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화의 물꼬가 트여 많은 학생들의 이태리, 독일, 미국 유학이 활발하고 저명한 국제 콩쿨에서도 상위권 입상자가 많이 배출되고 있습니다.
또 세계의 오페라 하우스에 서는 한국인이 점점 늘어가고 있기도 합니다. 한국인이 가진 음악적 능력과 끈기가 있기에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음악적 능력과 끈기와 더불어 세계적인 것을 한국적으로 소화해 내는 매력만 갖춘다면 최고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2007년 국제 콩쿨 입상자들과 공연했던 ‘조수미와 위너스 콘서트’도 그런 한국인의 자부심을 떨칠 수 있었던 무대였습니다.

-한국의 정서가 조수미의 음악활동을 통해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어떤 분에게서 ‘수미가 프랑스인이거나 이태리인이라면 지금보다 더 성공했을 거야’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국인이란 점이 무엇보다도 자랑스럽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고 싶지 않더군요.
오페라에 데뷔한 초기엔 국제 무대에 잘 적응하려면 내가 여러 면에서 서양화돼야 한다고 생각해서 머리도 노랗게 염색하고, 서구적으로 보이도록 입체 화장을 하고 다녔습니다.
유럽 유명 디자이너들의 옷을 입으면서 어떻게 하면 서양인처럼 보일 수 있을까 노력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적 정체성의 자긍심을 깨닫고 지금은 한국적인 면을 많이 부각시키고자 합니다.
제 이름도 ‘조수경’의 ‘경’자를 서양 사람들이 제대로 발음하지 못해 편의적으로 바꾸긴 했지만 ‘미리 넬슨’ 이란 서양식 이름으로 바꾸라는 조언에도 불구, 한국식 이름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 말로 된 한국가곡을 국제 무대에서 즐겨 부르고 있는데 94년 발매된 음반에도 윤용하 선생의 ‘보리밭’을 삽입했습니다. 한국인이기에 한국 음악을 세계에 널리 전파시키는 것도 제게 주어진 또 하나의 과제겠지요.

-국내 지인들과의 교류는 어느 정도 이뤄지는지요.

△사실 외국에 거주하다 보면 국내 지인들과 교류하거나 연락할 시간이 매우 제한적입니다.
내한 할 때에는 대부분 일정이 조금 빡빡하게 잡혀 있어서 다른 분들을 뵐 수 있는 기회가 자주 주어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제 의상을 기꺼이 협찬해 주시는 앙드레 김 선생님과는 외국에 있을 때 가끔씩 통화하기도 하고 내한 때마다 뵙곤 합니다.
유학을 떠나 서양화돼야 한다고 생각해 유럽 유명 디자이너들의 옷을 입거나 무대의상으로 좋을 만한 스타일을 직접 스케치해 옷을 만들어 입어 보려고 했고 다른 가수들처럼 크리스찬 디올, 샤넬을 많이 입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앙드레 김 선생님을 알게 됐는데 처음 그분의 옷을 보았을 때 옷이 가지고 있는 개성에 강한 매력을 느꼈습니다. 그 이후 다른 드레스는 입을 수 없을 정도로 그 독특한 아름다움에 빠져버렸습니다. 의상에 활용되는 한국적인 문양과 흐름, 색깔과 장식 등은 모든 것을 ‘서양화’에 초점 맞췄던 나에게 큰 자극이 됐습니다.

-사랑과 결혼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서 약간 벗어나 다른 이의 인생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게 되는데 이것은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는 가정에 충실한 주부의 모습을 그려보기도 하고 때로는 드라마에 나오는 다른 삶을 사는 여자들의 모습을 저의 모습과 비교해 보기도 하죠. 제게 비춰지는 다양한 여자들의 삶은 저의 삶과 그리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제가 음악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는 일을 한다는 점에선 다른 분들과 다를지 모르지만 자신의 인생을 충실히 살아가는 자세는 누구나 비슷하지 않을 까 싶습니다.
대학시절 어린 나이에 소중한 사랑을 해서인지 제 자서전에 언급했던 것처럼 ‘사랑과 비슷한 사랑’은 사양하고 싶습니다. 저의 삶은 음악을 빼고는 생각할 수가 없기 때문에 만약 운명적인 사랑을 만난다면 그 사람으로 인해 제 삶이 더 풍성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제 모습이 무대에 그대로 투영되기도 할 것입니다.

-현재 음악활동에 대해 만족하십니까.

△음악에는 완벽이란 없다고 봅니다. 제가 원하는 목표에 다가갈 수는 있겠지만 완벽의 경지에 이르기는 어렵지요.
늘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싶고 어떻게 하면 관객에게 더 다가갈 수 있고 스스로가 원하는 완벽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을지를 추구하는 것이 음악가의 길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크로스오버도 시도했었고 한 인물만 소화해야 하는 오페라보다는 여러 인물을 보여줄 수 있는 콘서트를 더 선호하지 않나 싶습니다.
저는 현실에 안주하기 보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에 더 만족을 느낍니다.

-음악 외적 활동과 여가생활에 대해서도 말씀 듣고 싶습니다.

△연주가 없을 때는 주로 일상적인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매일 운동하고, 애완견과 산책도 합니다.
장을 보거나 필요한 물품을 주변 가게에서 구입하는 소일거리로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로마에 사는 절친한 친구들을 만나러 가기도 하고요.
한동안 집을 비운 후 되돌아 왔을 때는 집안 꾸미기에 전념하기도 하는데 외국을 돌아다니며 모은 장식품으로 집안을 꾸미는 것도 즐거운 일입니다.
그런 일상을 보내다가 여유가 생기면 다음 공부할 작품의 연구에 들어갑니다. 몰입해서 연구하다가 책을 읽기도 하고 제게 온 편지를 읽다가 잠들기도 합니다.

-조수미가 가장 사랑하는 다섯 가지가 있다면 어떤 것들인가요.

△가장 우선적으로 음악을 꼽겠습니다. 제게 주어진 신의 선물이니까요.
다음으로 아이들을 꼽겠습니다. 항상 순수성과 가능성을 가진 해 맑은 아이들의 모습은 늘 제게 신비감과 행복을 느끼게 합니다.
다음은 동물들에 대한 저의 사랑입니다. 가끔씩 동물학대에 관한 신문 기사들을 접할 때 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가족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가족을 좀 늦게 언급하려니 좀 죄송한 생각이 드는데 가족은 늘 저의 안식처입니다.
마지막으로 미술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음악과 연관 있어서 그런지 바쁜 일정에도 늘 미술관을 찾아 그림을 보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그 시대의 문화를 이해시켜 주는 주소 음악과 일맥상통하는 무언가를 느끼곤 합니다. 결국 예술은 하나의 문화를 다른 형식으로 표현하는 것인 만큼 그 연관관계를 느낄 때마다 또 다른 기쁨을 느끼곤 합니다.

-애완견에 대한 소개좀...
△먼저 신디는 요크셔테리어 종의 애완견인데 제가 미국 워싱턴DC공연을 하던 중에 저를 아껴주시던 의사 선생님께서 제가 개를 좋아한다는 얘기를 듣고 저를 데리고 세시간 먼 곳까지 데려가셔서 선물로 주신 강아집니다. 모견이 뷰티 챔피언 출신이어서 그런지 신디는 매우 똑똑하다 못해 현명하기까지 한 구석이 있습니다. 이제 세 살이 되면서 애완견이라기보다는 함께 생활을 해가는 동반자와 같습니다. 여러 지역을 여행하게 될 때 저보다는 신디의 건강에 문제가 생길 여지가 많아서 요즘엔 같이 여행한 경우가 드물어졌습니다. ‘토미’와 ‘밀리’는 한배에서 난 형제인데 ‘토미’는 수놈, ‘밀리’는 암놈입니다. 과거에 큰 개를 좋아했었는데 그때부터 늘 제가 의지해왔던 친구들입니다.

-끝으로 자서전 등 출판계획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94년에 나온 제 자서전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를 데뷔 20주년을 맞아 지난 해 내용을 보강해 ‘아름다운 도전’이라는 책으로 다시 엮어서 냈습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또 한번 제가 지내온 삶을 되새겨 보고 싶습니다. 최근에는 어린이 또는 청소년에 대한 소설형식의 글을 한번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해오고 있는데 언제 실현에 옮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선형 [월간충청]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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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 대전에 집결한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 대전에 집결한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이 대전에 집결한다. 대전시는 '2025년 중소기업융합대전'개최지로 25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올해 행사에서 대회기를 이양받았다. 내년 대회는 대전 컨벤션센터에서 열린다. '중소기업융합대전'은 중소기업융합중앙회 주관으로 중소기업인들 간 업종 경계를 넘어 교류하는 것이 목적이다. 분야별 협업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지역별 순회하는 화합 행사 성격도 띠고 있다. 2004년 중소기업 한마음대회로 시작해 2014년 정부 행사로 격상되었으며 2019년부터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공동으로 개최하고 있다..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의 한 사립대학 총장이 여교수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경찰이 수사에 나선 가운데, 대학노조가 총장과 이사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대학 측은 성추행은 사실무근이라며 피해 교수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전국교수노동조합 A 대학 지회는 24일 학내에서 대학 총장 B 씨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성추행 피해를 주장하는 여교수 C 씨도 함께 현장에 나왔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C 씨는 노조원의 말을 빌려 당시 피해 상황을 설명했다. C 씨와 노조에 따르면, 비정년 트랙 신임 여교수인 C 씨는..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20대 신규 대원들 환영합니다." 23일 오후 5시 대전병무청 2층. 전국 최초 20대 위주의 자율방범대가 출범하는 위촉식 현장을 찾았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자원한 신입 대원들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첫인사를 건넸다. 첫 순찰을 앞둔 신입 대원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고, 맞은 편에는 오랜만에 젊은 대원을 맞이해 조금은 어색해하는 듯한 문화1동 자율방범대원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위촉식 축사를 통해 "주민 참여 치안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자율방범대는 시민들이 안전을 체감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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