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규식 한남대 프랑스어문학 전공 교수.대전문협 상임고문 |
법과 행정의 사각지대
개고기 식용은 여러 측면에서 비문화적이고 인도주의에 어긋나므로 원천적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입장과 오랜 전통의 민속음식으로 그 자체 이미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는 주장사이의 논쟁은 그간 수십 년의 세월을 거치는 동안 뚜렷한 결론도출 없이 대립각을 유지하고 있다. 거기에 당국의 엉거주춤한 수수방관이 더해지는 가운데 법과 행정의 사각지대로 그냥저냥 세월이 흘러가고 있다. 4월 중순 서울시는 개고기 안정성 검사를 실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개고기에 관한 실로 오랫만의 행정조치였다. 서울 시내 530개 개고기 식당을 대상으로 유해성분을 검사하여 식품위생법을 적용한다는 내용인데 현행 축산물가공법에는 개고기가 포함되지 않아 도축, 유통, 보관, 판매 등에 법규정이 수반되지 않는 공백상태로 그간 크고 작은 사회문제를 야기해왔던 만큼 이번 서울시의 조치는 다른 지자체에 영향을 끼칠듯하여 주목할만하다.
아울러 서울시는 축산물가공처리법에 개고기를 포함하는 건의를 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이것이 개고기유통 합법화와는 무관하다는 단서를 붙여 논란의 비화를 막고 있다. 개고기음식을 판매한다고 처벌하지는 않지만 위생, 안전검사에서도 제외되어 여러 불합리한 문제가 야기되기도 했다.
개고기 논쟁의 요지는 매우 간단하다. 사회가 바뀌어도 거의 변함이 없다. 개는 다른 동물과는 다른 만큼 식용은 절대불가하다는 입장과 식용 개고기는 애완견과 구분되며 오랜 민족전통이므로 이를 금기시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의 대립이 그것이다. 반대론자들은 가두홍보, 매스컴 활용같은 조직적인 대응과 국제여론에 호소하는 등 발빠른 행보를 보이는 반면 찬성측은 개고기를 먹음으로써 자신들의 의사를 암묵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여론합의 어렵다면···
우리 주변에는 환경과 의식구조의 신속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공감대 조성이나 묵시적 동의로 사회합의를 이끌어내기 어려운 과제들이 적지않다. 사형제도 폐지논란이 그러하고 대학기여입학제, 병역필자 가산점부여에 이르기까지 대립되는 의견만 분분할뿐 소모적 논쟁과 감정충돌의 반복을 벗어날 활발한 토론과 대승적인 대안도출에는 그리 적극적이지 못하였다. 개고기 논란도 그러한 맥락에서 볼 때 행정당국부터 정부수립 이후 뒷짐만 진 채 국민정서나 위생문제에 책임회피로 사실상의 직무유기를 해온 셈이다.
정치권도 첨예하게 대립하는 여론이 표심으로 연결될 것을 의식한 탓인지 입법조치에 더없이 게을렀다. 사형제 폐지법안만 하더라도 16대 국회에 상정되었으나 낮잠만 자다가 이제 18대 국회로 넘어가게 되었다.
개고기 반대측이 가열찬 의사표시와 행동을 중단할 전망은 희박하다. 또한 개고기 식당이 문을 닫고, 애호가들이 보신탕을 그만 먹겠다는 의향 역시 없어 보인다면 국민 공감대에 의한 합의점 도출은 사실상 어렵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제 공은 행정당국으로 넘어간다. 양측의 주장을 적절히 수용하면서 완전히 흔쾌하지는 않더라도 어느정도 납득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제시와 적절한 행정조치가 시급하다. 찬반론자 모두의 입장을 아우르면서 명분과 실리를 얻을 방안을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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