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정숙 천안 충남예술고 교사 |
미혼인 탓에 어린이날도, 실(失) 부모 한 탓에 어버이날도 의식 없이 지내지만, 이어지는 스승의 날은 신경이 쓰인다. 올해도 역시 고마운 분들을 한 분 한 분 떠올리고 있던 차에 교무실 칠판에서 「예고 선생님, 꼭 읽어보세요!」 라는 문구를 보았다. ‘보험 판촉이라도 하는 거야, 뭐야?`하며 무심히 바라보는데 그 밑에 친필로 씌어진 분홍 바탕의 편지와 봉투가 매달려 있다. ‘이건 또 무슨 시추에이션?`하며 눈을 껌벅이는데 몇몇 선생님들이 함께 와서 본다. 저작권 문제 때문에 이 내용을 그대로 옮길 수는 없지만, 스승의 날을 위해 만들어진 듯한 디자인의 이 편지지가 바라만 봐도 흐뭇하게 한다.
편지를 보낸 사람은 예고 졸업생인데 대학을 졸업한 후 공부를 더 하고 싶어서 다른 대학에 진학했다고 한다. 누가 보아도 전공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분야인데, 전공과 접목시킨 창의적인 활동을 해보려고 한다는 것이 발송인의 의지이다. 고등학교시절의 추억이 많이 생각나서 편지를 쓴다는데 내용 중에 ‘수업도 많이 빠지고 몰래 탁구치고`등을 적은 것을 보니 이 졸업생은 학교생활을 즐겁게 했던 모양이다. 그 당시는 신설학교였는데 이렇게 발전된 모습을 보니 마음이 뿌듯하단다.
본인을 가르쳐주셨던 선생님들처럼, 현재 근무 중인 선생님들도 좋은 분들이라고 들었단다. 학교 다닐 때는 말썽만 피웠고 학교에 별 도움이 못 되었지만 이젠 성공해서 모교 발전에 크게 기여하는 인물이 되겠다는 각오를 적어 보냈다. 간결하면서도 투박한 문체였지만 자신의 의지를 강하게 전달하는 느낌을 받았고, 은근히 어깨가 무거워짐을 느꼈다. 내가 직접 지도한 학생도 아니고, 전공도 다른 학생이었다지만, 과연 지금의 우리 학생들에게 이 졸업생과 같은 마음을 갖게 할 수 있을까?
잠재적 교육과정에 의하면, 긍정이든 부정이든 학생들은 교사를 동일시 대상으로 삼아 행동을 은연중에 모방하게 된다. 그러고 보니 이 졸업생은 학교생활 속에서 참 건강한 의지를 얻고 나갔고 이 졸업생의 은사님들은 학생들에게 건강한 기상을 보여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문득 부끄러워짐을 느끼며 새로운 각오를 하게 된다. ‘말썽만 피웠다`는 이 졸업생의 표현처럼 말썽꾸러기라고 구분되는 학생들에 대해 나는 얼마만큼의 애정 담긴 지도를 하고 있는가? 이제부터라도 내가 맡은 학생들과, 직접 수업은 하지 않지만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고 있는 학생들, 또 나와 관련된 모든 학생들에게 건강한 의지와 기상을 보여주는 참 교사가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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