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억중 건축가, 한남대 교수 |
30-40년 전으로만 거슬러 올라가도 도시 근교 웬만한 마을 곳곳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었던 정겨운 풍경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풍경이 되었지만, 더 슬프고 안타까운 것은 그 속에 배어있던 전통의 얼과 문화컨텐츠를 통째로 잃고 말았다는 데 있다.
그 시절 대부분 사람들은 삶의 멋과 맛을 놀이를 통해 맘껏 풀어낼 줄 알았던 것 같다. 이를테면 자연의 리듬을 정확히 분별하여 절기를 제정하고 때마다 고유한 축제의식을 마련하여, 하늘과 땅이 내려주신 은총에 감사하며 놀 줄 알았다.
그런가 하면 마을에 관혼상제가 있을 때마다, 서로 돕고 격려하며 끝내는 아프고 슬픈 한(恨)을 기쁘고 벅찬 흥(興)으로 승화시켜 마을의 공동체적인 삶을 굳건하게 지켜나가려 했던 그 정신은 얼마나 위대했던가. 마을에 흉년이 들었어도 갖은 고통과 애환으로 찌들린 삶터에서 흥과 해학을 잃지 않았고, 일을 하다가 지치고 힘들면 잠시 일손을 거두어 가무를 즐기며 흥을 북돋아낼 줄 알았다.
그렇게 놀이를 통해 차고 넘치는 기운을 얻고 나면 일터로 되돌아와 제 각각 내로라하는 최고의 재화를 생산해 내느라 여념이 없던 ‘쟁이`들의 삶이었다. 그리하여 모두가 만나서 서로 감화하며 함께 모여 더불어 살아가려는 저 접화군생(接化群生)의 이상향을 일상의 삶에서 몸소 구현했던 현인들이었으니, 그들은 저마다 고도로 정화된 삶의 달인이었고 풍류를 즐길 줄 아는 참다운 예술가들이었다.
놀라운 것은 그들이 그렇게 일상의 삶 속에서 진드근하게 만들어낸 온갖 형태의 음악, 무용, 미술, 건축, 공예, 놀이들 중에는 한국의 독창적인 전통성을 간직하면서도 세계인들이 놀랄만한 최고 수준의 경쟁력 있는 문화컨텐츠로 거듭 날 수 있는 자산이 무수히 많다는 사실이다.
어디 그뿐인가? 일과 휴식과 놀이를 제 각각 분리된 삶으로 살지 않고 하나의 선순환구조 속에 적절히 융화시켜가며 살아갈 수 있었던 삶의 지혜와 풍류의 미학으로 치자면, 후기산업사회 후유증에 직면해있는 세계인 모두가 앞 다투어 벤치마킹해야 할 새로운 삶의 철학과 비전이요 나아가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노동과 경영의 혁신 모델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렇다면, 이처럼 엄청난 문화컨텐츠로서의 잠재력을 지닌 풍류를 21세기 대전의 지속가능한 경쟁력의 원천으로 삼는 것은 어떠할까? 그러기 위해서는 전통의 얼과 기술을 제대로 이어가는 교육의 터전을 바로 세워야 하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유, 무형 자산의 생산과정을 다양한 볼거리, 즐길거리로 만들어 문화상품화 하고, 뭇사람들이 끊임없이 모여들 수 있도록 수준 높은 이벤트와 축제로 재구성해낼 필요가 있다. 이처럼 매력 있는 문화관광 인프라가 깔리지 않는다면 어느 누가 척박하기만 한 대전의 미래에 선뜻 투자를 하겠는가? 대전을 풍류의 메카로 만들어야 하는 소이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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