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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는 알다시피 코리아타운과 차이나타운, 리틀 도쿄 등이 있다. 이탈리아 거리, 멕시코 거리가 있고 유태인 지구가 있다. 스페인 과수원과 노르웨이 보리밭도 있다. 한국의 보리밭만 추가하면 국제인종집합소로서 손색없을 텐데 그건 없다.
아쉽지만 한편으로는 없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든 세대에게 한국의 보리밭은 향수병을 도지게 하고 민족정서를 건드리는 흥분제 아니던가. 참을 수 없는 바람의 애무에 풋보리 춤바람이 날 즈음이면 몸이 근질거려, 보리밭의 일렁임과 휘파람 소리의 애환과 청보리 같은 옛 여자 생각에 뜬금없이 귀국하려는 교포도 혹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 이숙자 「청맥(靑麥)」 |
아마 아닐 것이다. 종달새 날리고 깜부기 뽑는다는 핑계로 드나들던 보리밭도, 상품성에 길들여지지 않은 보리밭의 여인도, 풋풋함과 애잔함과 건강한 에로티시즘과는 거리 먼 그런 것들. 그저 보리새싹이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웰빙식품이고 양념해서 살짝 버무리면 향미가 있다는 것, 조경용이나 꽃꽂이 장식용의 ‘풀`이라는 정도일 것이다. 보리밭이 본능을 일깨운다는 깊은 속뜻은 어림짐작이나 할까.
하나의 정욕은 하나의 보리알과 같다. 괴테의 추억같이 스치는 이 말보다 계룡로 가로수 플라타너스 가로수에 정신장애우 일동이 매단 팻말이 더 눈에 밟힌다. ‘보리가 심어져 있으니 쓰레기 버리지 말아 주세요.` 오래 전에 본 킴 카잘리의 연작만화 한 컷도 보리밭 이랑을 거슬러 걷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사람을 맥없이 보리밭으로 내몰고 있다. 사랑이란 보리밭에 길을 내는 것이라는, 빛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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