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밖]숟가락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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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밖]숟가락의 재발견

  • 승인 2008-04-30 00:00
  • 신문게재 2008-05-01 21면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대략, 전 세계 인구의 3할은 포크와 나이프를, 3할은 젓가락을 쓰고 4할은 맨손으로 밥을 먹는다. 유럽 중세 상류사회에서도 숟가락(스푼)과 손가락 식사가 식탁예절이었고 포크의 일상화는 16세기에 이르러서다.…


숟가락은 중국과 일본에서는 보조 용구지만 우리에겐 각별하다. 사업이 잘 되느냐 물었을 때, “밥술이나 뜹니다”라거나 “밥은 먹고 삽니다” 한다면 신통방통하지 않다는 뜻도, 그럭저럭 된다는 뜻도 된다. 밥은 체(體), 국은 용(用)이다. 밥은 삶, 숟가락은 삶의 도구다. 밥숟가락 놓는 건 곧 죽음이다.

이 숟가락이 소중한 도구임은 야구장에서도 확인했다. 지난주 기아 타이거즈와의 경기 도중 우리 히어로즈 투수가 마운드에서 신발 스파이크의 흙을 파내는 데 썼다. 급기야 동서양을 통틀어 가장 오래된 이 식사도구는 그 이틀 뒤 우리 정치판에 화두(?)로 등장한다.

발단은 청와대 여야 지도부 초청 오찬에 이회창 선진당 총재가 초대받지 못한 것. 당사자인 이 총재는 “젓가락 하나 더 놓으면 되는데…”라며 발끈했다. 숟가락과 젓가락의 지향점은 같다. 또, “숟가락 하나 더 놓자는 게 아니(다)”라는 같은 당 류근찬 정책위의장은 “충청인에 대한 보복”이라고 소수정파가 겪는 왕따 설움을 입언(立言)했다.

충청권이 갖는 선거공학적 의미를 무시한 괘씸함. 어찌 수저 한 벌, 밥 한 그릇 탐하는 그까짓 입의 유혹 때문이겠는가. “대전에 오면 밥은 잘 사줘요.” 전시회에서 만난 문인화가 자헌 이성순의 말은 실인즉 그림 한 점 안 사주는 인색함을 향한 반어법이었다.

가끔 우리는 뚝배기 그릇에 숟가락을 함께 담그는 행위에서 극상등의 일체감을 맛본다. 숟가락이 쇠손가락이면 손가락은 부모가 내린 만능 숟가락이다. 원내교섭단체(의석 20석 이상 정당) 요건에 못 든다고 숟가락 놓기를 거부한 청와대나 여당도, 민주당도 속 좁다. DJ 때 민주당 3석을 자민련에 꿔주고 이에 반발한 강창희 의원이 제명당한 ‘사건`은 주머니 구구에 박 터지던 옛일이다.

다 제쳐두고, 선진당에서 보고 싶은 모습이 있다. 다 된 밥에 숟가락 들고 덤비는 정치와 결별하는 자세, 지역에 뿌리를 뒀지만 지역주의 정당의 한계를 벗는 당찬 모습, 그리고 선진당의 생명이 숫자에 없고 정체성에 있다고 한다면, 충청권 18석을 바람몰이한 그 말 아래[馬下]로 내려와 선진당의 새 숟가락을 드는 의연함이다.

모자란 2석을 채워 언젠가 비교섭단체의 비애를 벗더라도 이는 한결같아야 한다. 유리걸식 거지의 허리춤에도, 탁발승의 바랑에도 숟가락은 있다. 영입작업보다 중요한 것은 제 수저, 제 밥그릇 제 손으로 챙기기다. 그러지 못할 바엔, 운동화 스파이크에 들러붙은 흙을 누룽지 긁듯 긁는 야구선수처럼 숟가락의 다른 용도라도 생각하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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