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영]“듣지 않고는 결정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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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듣지 않고는 결정하지 마라”

[시사에세이]김재영 충남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

  • 승인 2008-04-28 00:00
  • 신문게재 2008-04-29 20면
  • 김재영 충남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김재영 충남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
▲ 김재영 충남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
▲ 김재영 충남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
학생들에게 가끔 발표 과제를 낸다. 요즘 기업들이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즐겨 쓰는 테스트 중 하나가 기획서 작성과 프리젠테이션이기에 학생들의 적응력을 조금이나마 높이려는 의도에서다. 선생 입장에서 딱히 충고할 것도 없을 만큼 잘하는 학생들이 제법 있다.

상대적으로 잘 듣는 학생은 많지 않다. 자기가 말할 때 상대방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얼마나 맥 빠지는 일인지 잘 알면서도 남들이 발표할 때 무심히 듣거나 잡담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게 어디 학생들에게만 국한된 현상일까.

말 잘하는 사람은 많거늘 남의 말 잘 듣는 사람은 적은 게 현실이다. 입은 하나인데 귀는 두 개인 까닭이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을 중시하라는 의미라고 한다. 귀가 입보다 높은 데 있는 이유도 말하기보다 듣기가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말 잘한다고 칭찬하는 경우는 봤어도 잘 듣는다고 우대하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말하는 데는 젬병이었으나 귀 기울여 듣기에 일가견이 있었다고 회자되는 인물이 있다. 한 시대를 평정한 칭기즈칸이다. 그는 글자를 쓸 줄도 읽을 줄도 몰랐다. 그러나 스스로 “내 귀가 나를 가르쳤다”고 말할 정도로 누구의 말이든 세심하게 경청해 현명해졌다고 한다. “한 사람의 꿈은 꿈일지 모르나 만인의 꿈은 현실이다”란 그의 명언도 기실 비범한 말재주라기보다 묵묵한 경청의 소산이었으리라.

리더십에는 여러 유형이 있다. 최근 각광받는 리더십은 소통을 중시하는 공감의 리더십이다. 칭기즈칸과 함께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도 사람들과 쉽게 포옹하는 공감의 리더십을 지녔다고 평가된다. 스스로 말을 많이 하는 대신 출연자와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상대방이 편안히 더 많은 말을 하도록 이끌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리더십은 이와 정반대다. 국민의 말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한 무리수가 이어지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 물꼬를 튼 지역 간 균형발전에 역행하는 일련의 조치들이 전형적이다.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도 동의한 혁신도시 건설을 백지화하려 시도한 데 이어 이틀 전엔 국가균형발전위원장에 행정수도 이전 반대운동을 펼친 이력이 있는 인사를 내정했다. 이는 총선이 끝난 틈을 이용해 수도권에 비해 덜 ‘매력적인` 지역민의 목소리를 대놓고 외면하겠다는 처사다.

한·미 쇠고기 협상도 마찬가지다. 예상보다 큰 폭의 개방으로 축산농가에 미칠 충격파가 엄청날 텐데 아무런 보호 대책도 강구하지 않은 것은 국민을 섬기기보다 제압하겠다는 자세다. 그러니 “살지 말지는 소비자 몫”이란 독불장군식 발언까지 나오는 것이다. 게다가 광우병 의심 사례가 발생해도 우리 스스로 수입 제한 조치를 취할 수 없게 되었다. 명백한 검역 주권의 포기로 국민의 아우성에 귀를 닫은 것은 물론 정부가 나서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한갓 거래의 대상으로 삼은 모양새다.

한반도 대운하 추진을 위한 정부기구 구성과 특별법 제정을 무기한 보류하기로 결정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총선 뒤 밀어붙이기가 예상되었으나 일단 민심에 귀 기울이기로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귀를 더 활짝 열어 민심을 천심으로 받든다면 생태계 파괴와 투기 광풍이 예견되는 대운하는 유보가 아니라 철회의 대상이다.

꼭두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바지런 떤다고 다가 아니다. 명령하고 군림하는 리더십이 약발을 발휘하는 시대는 지났다. 지금 우리에겐 이야기 듣고 소통할 줄 아는 대통령이 필요하다. “듣지 않고는 결정하지 마라.” 이명박 대통령이 칭기즈칸에게 배워야 할 생활 철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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