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똑부러진 아줌마표[標] 대답에서 함무라비 법전의 원형질을 발견했다. (196조와 200조에 남아 있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는 동해보복(同害報復)의 선을 넘지 말라는 의도도 있다.) “짐승에게 무슨 인권?” 아니면 “흉악범도 사람!”과 같은 쌔고 버린 논쟁을 펴려던 게 아니기에 미국 가면 화학적 거세법이 있긴 있다는 말로 서둘러 봉합했다.
엄마이며 아내인 아줌마는 세태의 흉흉함을 건조하게 말했을 뿐이지만 그게 보통사람들의 솔직한 법감정이다. 한편 생각하면 신신애 노래가 있기 이전도 세상은 충분히 요지경 속이었다. 최소 3760년은 된 함무라비도 ‘요새 젊은이들’ 걱정을 했고 2500년 전 소크라테스는 우리 이웃집 아저씨 같은 잔소리를 늘어놓고 있었다.
강간죄는 상해만 안 입히면 범죄 축에 못 드는 시절이 있었다. 20년 전을 돌아보면 공무원은 몰라보게 깨끗하다. 그런데도 법의 날(25일) 여론조사에서 공직자 부패·비리 척결(27.3%)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첫째로 많았다. 공직은 더 맑아져야 한다. 옛날에도 급우를 개 패듯 팼지만 학교폭력 개념조차 없었다. 모든 유·무형의 폭력은 사라져야 한다. 30년 전 독자로서 읽던 신문 사설과 칼럼은 지금 논설위원이 되어 쓰는 논조보다 수위가 높고 격정적이었다.
무슨 일만 터지면 물컹한 법이 탈이라지만 법전은 계속 두꺼워져 간다. 법망은 정교하고 치밀해졌으나 법 지키면 손해라는 국민이 5명 중 1명이다. 법은 더 똑똑해져야 하고 법의식은 세상 끝까지도 향상돼야 한다.
“잘라버립시다”라는, 고조선이나 함무라비 시대에나 어울리는, 갑오경장 이전의 원님재판 때도 안 나온 어휘가 곱디고운 아줌마의 입술에서 스스럼없이 튀어나온 이유는 간명직절(簡明直截)하다. 법이 주먹보다 멀고 법보다 재산과 권력이 위력적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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