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밖]“차라리 잘라 버립시다”

  • 오피니언
  • 문화칼럼

[안과밖]“차라리 잘라 버립시다”

  • 승인 2008-04-24 00:00
  • 신문게재 2008-04-25 21면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요새 젊은이들은 사치를 너무 좋아해. 버릇이 없고 권위를 무시해. 어른을 공경하지 않고 교훈 대신 잡담을 좋아하지. 젊은이들은 또 부모 말을 듣지 않고, 손님 앞에서 떠들고,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고, 선생 앞에서 횡포를 부리거든. (소크라테스)


성폭행범에 대한 솔직한 법감정은 무엇일까. ‘대한민국 아줌마’들을 대상으로 강의하면서 이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좋겠느냐 물었더니 “잘라야 합니다”였다. 놀랄 노릇이다. 진지하게 다시 물었다. “잘라 버려야 해요”라는 답이 재차 돌아왔다.

그 똑부러진 아줌마표[標] 대답에서 함무라비 법전의 원형질을 발견했다. (196조와 200조에 남아 있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는 동해보복(同害報復)의 선을 넘지 말라는 의도도 있다.) “짐승에게 무슨 인권?” 아니면 “흉악범도 사람!”과 같은 쌔고 버린 논쟁을 펴려던 게 아니기에 미국 가면 화학적 거세법이 있긴 있다는 말로 서둘러 봉합했다.

엄마이며 아내인 아줌마는 세태의 흉흉함을 건조하게 말했을 뿐이지만 그게 보통사람들의 솔직한 법감정이다. 한편 생각하면 신신애 노래가 있기 이전도 세상은 충분히 요지경 속이었다. 최소 3760년은 된 함무라비도 ‘요새 젊은이들’ 걱정을 했고 2500년 전 소크라테스는 우리 이웃집 아저씨 같은 잔소리를 늘어놓고 있었다.

당대를 기준으로 세상은 늘 말세였고 종말을 고할 것 같던 인류는 지겨운 잔소리와 더불어 끄떡없이 건재한다. 인류가 조금씩 선해진다는 베르그송의 말을 온전히 지지하진 않지만 진보한 점은 인정해야 한다. 밤거리 치안은 부녀자 보쌈이 횡행하던 조선시대보다 낫다. 이라크를 쑥대밭으로 만든 미국도 이민족 도시를 함락하면 전리품처럼 약탈이 행해지던 고대나 중세 국가보다야 엄청 양반이다.

강간죄는 상해만 안 입히면 범죄 축에 못 드는 시절이 있었다. 20년 전을 돌아보면 공무원은 몰라보게 깨끗하다. 그런데도 법의 날(25일) 여론조사에서 공직자 부패·비리 척결(27.3%)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첫째로 많았다. 공직은 더 맑아져야 한다. 옛날에도 급우를 개 패듯 팼지만 학교폭력 개념조차 없었다. 모든 유·무형의 폭력은 사라져야 한다. 30년 전 독자로서 읽던 신문 사설과 칼럼은 지금 논설위원이 되어 쓰는 논조보다 수위가 높고 격정적이었다.

무슨 일만 터지면 물컹한 법이 탈이라지만 법전은 계속 두꺼워져 간다. 법망은 정교하고 치밀해졌으나 법 지키면 손해라는 국민이 5명 중 1명이다. 법은 더 똑똑해져야 하고 법의식은 세상 끝까지도 향상돼야 한다.

“잘라버립시다”라는, 고조선이나 함무라비 시대에나 어울리는, 갑오경장 이전의 원님재판 때도 안 나온 어휘가 곱디고운 아줌마의 입술에서 스스럼없이 튀어나온 이유는 간명직절(簡明直截)하다. 법이 주먹보다 멀고 법보다 재산과 권력이 위력적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2.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3. 차세대 스마트 교통안전 플랫폼 전문기업, '(주)퀀텀게이트' 주목
  4.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5. 전국 아파트 값 하락 전환… 충청권 하락 폭 더 커져
  1. 유등노인복지관, 후원자.자원봉사자의 날
  2. 대전시, 12월부터 배출가스 5등급 차량 운행 제한
  3. [화제의 인물]직원들 환갑잔치 해주는 대전아너소사이어티 117호 고윤석 (주)파인네스트 대표
  4. 생명종합사회복지관, 마을축제 '세대공감 뉴-트로 축제' 개최
  5. 월평종합사회복지관과 '사랑의 오누이 & 사랑 나누기' 결연활동한 동방고 국무총리 표창

헤드라인 뉴스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환이야, 많이 아팠지. 네가 떠나는 금요일, 마침 우리를 만나고서 작별했지. 이별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 -환이를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21일 대전 서구 괴곡동 대전시립 추모공원에 작별의 편지를 읽는 낮은 목소리가 말 없는 무덤을 맴돌았다. 시립묘지 안에 정성스럽게 키운 향나무 아래에 방임과 학대 속에 고통을 겪은 '환이(가명)'는 그렇게 안장됐다. 2022년 11월 친모의 학대로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된 환이는 충남대병원 소아 중환자실에서 24개월을 치료에 응했고, 외롭지 않았다.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24시간 환..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2일 대전에서 열린 환경부의 금강권역 하천유역 수자원관리계획 공청회가 환경단체와 청양 주민들의 강한 반발 속에 개최 2시간 만에 종료됐다. 환경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환경단체와 청양 지천댐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공청회 개최 전부터 단상에 가까운 앞좌석에 앉아 '꼼수로 신규댐 건설을 획책하는 졸속 공청회 반대한다' 등의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경찰력을 투입해 공청회와 토론이 진행될 단상 앞을 지켰다. 서해엽 환경부 수자원개발과장 "정상적인 공청회 진행을 위해 정숙해달라"며 마..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