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정희 대전송강중 교사 |
나는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몸도 튼튼한 체육선생님이 날이면 날마다 웬 보약이란 말인가. 그것도 한 봉지도 아니고….’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개인적인 사정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궁금증을 참았다. 궁금증은 오래지 않아 풀렸다.
한 달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예체능부 교과협의회를 하기 위해 9명의 예체능 선생님은 체육선생님의 승용차에 올랐다. 뒷좌석 주머니에는 일일학습지가 주머니가 터질 정도로 가득이었다. 사모님이 일일학습지를 하시나 생각하며 “웬 학습지가 가득하네요.?”라고 묻자, 체육 선생님은 머리를 긁적이시며 “우리아이들 거예요.” “우리 역도부 아이들요” 라고 답했다.
“우리 역도부 아이들이 운동을 하다가 쉬는 시간에 잠깐 틈을 내어 일일 학습지를 풀어요. 그리고 아이들이 역도 연습을 하는 동안 채점하고 또 틀린 것은 다시 보게 하는 거예요.” “그럼 영어, 수학, 한자 모두요?” “네, 3과목만 하고 있어요. 시간 여유가 없어서…”라며 말을 흐렸다.
“3과목만 한다고요? 무슨 말씀이세요? 3과목이나 하시면서, 선생님 참 대단해요. 순간 매일 아침마다 양손에 들고 오던 보약도 역도부 아이들을 위한 배려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에 “아침에 보약도 역도부 아이들 먹이시는 건가요?”라고 묻자 “네”라는 대답과 함께 수줍은 미소 짓는다.
난 더 이상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KO패를 당한기분이었다. 그러나 기분 나쁜 KO가 아닌 온 몸을 감동으로 휩싸는 기분 좋은 KO였다.
이른 아침 아이들과 함께 학교 운동장에서 기초 체력 운동이 끝나고 나면 보약을 먹이고, 오전에는 학교수업에 그리고 오후가 되면 운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체육선생님의 하루 생활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늘 우리아이들이란 단어를 쓰는 것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더니… 아이들을 자기 몸처럼 아끼며 키우다보니 우리아이들이란 단어가 입어 붙었나보다.
난 이때부터 역도부편이 되었다. 역도부는 예쁘다. 무조건 예쁘다. 아이들도, 선생님도…역도부 아이들이 잘 자라는 것도, 열심히 운동하는 것도, 역도부의 분위기가 항상 따스한 것도 ‘보약 든 남자’때문일 것이다.
우리 학교의 ‘보약 든 남자’는 요즘 큰 반찬통도 들고 다닌다. 역도부 한 아이가 부모님과 함께 지내지 못해 반찬이 변변찮아서라고 한다. 정말 못말리는 남자다. 그런데 그 반찬통을 든 선생님은 참 멋있고, 행복해 보이며, 우리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는 남자며 정말 선생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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