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의 손자인 유안은 중앙집권을 강화한 당대에 맞서 지방분권적 자치에 비중을 실었다. 유가적 대통합주의를 지향한 한(漢)나라나, 지금의 한나라당 정권에서나 중앙과 지방의 모순은 풀리지 않는다. 혁신도시에 2조 4000억원의 토지보상금을 풀고 공사를 착수한 상황에서 정권이 교체됐다고 국책사업을 손보려는 방법론의 빈곤. 중앙집권이 백성의 지위를 향상시킨다는 논리에 도달한 고려나 조선의 잔영을 그 안에서 본다.
한마디로 지난 정권이 말뚝 박은 정책을 첫 단추를 빌미로 전봇대 뽑듯 뽑아내려 하고 있다.
뽑히는 날엔 산.학.연.관 네트워킹을 통한 지역 거점 확보가 유야무야되고 민간이 주도하는 기업도시도 뿌리가 온전할 수 없다. 이것은 시장 간섭 전반을 규제 완화의 틀로 스크린하는 것과는 별개 문제다.
닮은꼴은 아직 많다. 한 무제에게 동중서(董仲舒)가, 진시황에게 이사(李斯)가, 부시에게 네오콘이 있었다면 지금은 국토연구원이 있다. 기업과 주민 없는 ‘죽은 도시’는 ‘허허벌판 행정도시’ 논리의 신판이다. 원점 재검토, 특화정책 전환은 명제라는 물고기에도, 논리라는 물길에도 맞지 않다. 균형발전의 잘못은 균형으로 풀면 된다.
그럼에도 균형발전 정책에 개발주의 프레임을 덧씌우고 수도권 위주의 동종교배를 시도하는 것을 지방은 알고 있다. 크고 작음은 같을 수 없고 귀천은 정해졌다는 동중서의 언명이 2100년을 훨씬 넘어 꿈틀거리며 균형발전이 날치기당하는데 지방은 잠자코 구경하지 않을 것이다.
권력과 지식이 똘똘 뭉친 집단의식에서 회남자의 아주 오래된 미래를 보는 지금은 지방분권의 위기다. ‘전면 재검토’는 ‘설(說)’로 끝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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