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문 (가),(나)에 나타난 아버지의 모습을 설명하고 현대 사회에서의 바람직한 아버지의 역할에 대하여 논하시오.
[유의 사항]
① 논지나 근거를 구체적으로 제시할 것
② 1200자(±100) 분량으로 쓸 것
③ 시간은 120분임.
(가)
지상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전등이 켜질 무렵을
문수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십구 문 반(十九文半)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 문 삼(六文三)의 코가 납작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벽을 짜 올린
여기는
지상.
연민한 삶의 길이여.
내 신발은 십구 문 반.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구 문 반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문수 : 신발 크기를 나타내는 단위
- 박목월, 『가정』 -
(나)
▲ 영화 ‘아버지`의 한 장면 |
선비의 체면을 아랑곳하지 않고 숯과 다른 땔감을 취급하는 구멍가게를 낸 것도 그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멀리 고향으로부터, 가까이는 남대문에서 물건을 받아다 동네 사람들에게 소매를 하셨다. 하지만 본격적인 장사꾼 노릇보다는 주민들의 예의범절 교육에 더 적극적이셨던 것 같다. 그 일 역시 돈이 될 리 없었다.
빈곤 속에서 아버지의 선비정신은 오히려 더 꼿꼿하게 머리를 들었다. 손님이든 행인이든 버릇없는 사람을 대하면 그 자리에서 가차없이 지적하고, 말이 통할 때까지 성의껏 타이르셨다.
아버지는 험한 말을 함부로 입에 올리는 분이 아니셨다. 부부싸움을 할 때도 남의 말 하듯이 “저 사람이 왜 저러시나?” 한 마디면 모든 게 끝이었다. 자식들에게도 막말을 하시는 법이 없으셨다. 나는 아버지로부터 단 한 번도 큰소리를 들어 보지 못했다. 어머니 또한 막내인 내게도 말을 놓지 않으셨다.
“손이 안 닿는 곳에 있는 음식을 먹으려고 하지 말게.”
“세 번 이상 청을 받기 전에는 남의 집 잔치에 가는 것이 아니네.”
어느 분이 먼저 그 말을 하시기 시작했는지, 나에게는 명확한 기억이 없다. 아무튼 아버지와 어머니는 밥상머리에서 자식들에게 이런 말을 반복해서 들려 주셨다. 그런 밥상머리 교육은 받았지만 정작 우리는 팔을 뻗어야 집을 수 있을 만큼 반찬이 가득한 밥상을 받아 본 적이 별로 없고, 간곡히 오라고 부르는 잔치도 딱히 없었다. - 정운찬, 『가슴으로 생각하라』-
[논제분석 및 출제의도]
이 문제는 (가)와 (나)에 나타난 아버지의 모습을 분석하여 설명하고 현대 사회에서의 바람직한 아버지의 역할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논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가)시는 1960년대 말에 발표된 시로서 6.25 전쟁의 상처와 괴로움이 아직도 남아 있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시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굴욕과 굶주림과 추위에 떠는 스스로에게 연민을 느낄 정도로 힘겨운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육문 삼의 막내둥이의 신발 옆에 십구 문 반의 자신의 신발을 벗으면서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절절히 느끼는 아버지이다. 그리고 그 책임감은 강아지같은 자식들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비롯한 것임을 아는 아버지, 마음의 사랑에 비해 현실적으로 베푸는 사랑이 너무 적어 늘 미안한 아버지이다. 즉 (가)에서 학생들은 가족에 대한 경제적 책임을 다하려는 아버지의 모습과 더불어 최선을 다하면서도 가족에 늘 미안한 큰 사랑을 가진 아버지의 모습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나)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양반 가문에서 예학을 몸에 익혔지만 가세가 기울어 가족의 생계를 위해 대서소에도 나가고 장사도 한다. 그러나 선비정신이 몸에 배인 아버지는 가정의 경제적 안정보다는 이웃이나 자식의 교육에 더 가치를 두는 사람이다. 어머니나 자식들에게 함부로 말하지 않고 손이 안 닿는 곳의 음식을 일부러 손을 뻗어 먹지 않는, 세 번 청하기 전에는 잔치집에도 가서는 안 되는 선비의 자존심을 가르치는 아버지이다. 즉 (나)에서 학생들은 교육자로서의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가)와 (나)에 나타난 아버지의 모습은 1950년대, 1960년대 아버지의 모습이다. 학생들은 50여년 전의 아버지의 모습을 참고하여 현대 사회에서의 아버지의 올바른 역할을 자신의 관점에서 논해야 할 것이다.
[학생예문]심해람 대전대청중학교 3학년
▲ 심해람 대전대청중학교 3학년 |
글(가)에 나타난 아버지는 대부분의 아버지들이 그렇듯이 자식들 앞에서 웃는 모습의 아버지이다. 그러나 그 웃음 뒤에는 눈과 얼음으로 벽을 쌓아 올린 지상에서 경제적 책임을 지고 있는 아버지가 있다. 그리고 스스로를 가여워하는 또 하나의 아버지가 있다.
글(나)의 아버지는 부드럽지만 위엄 있는 아버지이다. 얼어 죽을지언정 곁불을 쬐지 않는다는 선비로서의 자존심을 지닌 아버지이다. 어떻게 보면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어서 경제적 능력이 부족한 아버지이다. 그러나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라는 자식들은 아버지를 보고 배워서, 가난하지만 비굴하지 않게, 어떠한 상황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으며 사는 사람이 될 것이다.
현대 사회의 아버지의 모습은 어떨까?
예전에는 자식들이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지금보다 현저하게 적었다. 그래서 자식들은 (나)에서처럼 아버지를 통해 사회를 배우고 간접 경험을 할 수 있었으며 해야 할 것과 해서는 안 될 것도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식들이 아버지에게서만 세상을 배우는 시대는 지났다. 우리 사회 전반에 관한 온갖 정보를 전달해 주는 TV와 인터넷 같은 미디어가 있다.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우리의 교육을 맡고 있다.
그렇다면 현대 사회에서 아버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아버지는 고독을 느끼는 가족과 소통해야 한다. 지식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감정적으로 점점 더 외로워져 가는 자기 자신, 어머니, 그리고 자식들과 대화를 통한 소통의 중심에 아버지가 서 있어야 한다. 모든 어려운 삶의 문제를 아버지와 의논할 수 있는 아들이 잘못된 삶을 살 수 없고, 아버지의 진심에 의해 위로 받는 어머니가 불행할 리 없다. 그리고 아버지 자신도 대화를 통하여 가족들에게 이해와 위로를 받아야 한다. 자식들은 아버지의 웃는 얼굴만 보기 때문에 아버지의 추위와 굶주림과 자신에 대한 연민에서 오는 슬픔을 모르기 때문이다.
경제적 책임을 어머니와 나누어 지고, 교육적 책임을 사회에 나누어 준 오늘날의 아버지는 따뜻한 한 사람으로서 배려와 이해와 사랑으로 가족 구성원 간의 완전한 소통의 역할을 맡아야 할 것이다.
-중학교 2-1 생활국어 교과서
[총평]안상호 대전대청중학교 교사
▲ 안상호 대전대청중학교 교사 |
이번 논제에서는 먼저 1950년대, 6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제시문 (가)와 (나)에 나타난 아버지의 모습이 어떠한지 파악하고 2000년대인 현대에서 아버지의 바람직한 역할은 무엇인지 자신의 의견을 구체적으로 논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복잡한 사고를 요하지 않는 문제로서 논술을 많이 접하지 않는 학생도 쉽게 답을 함으로써 논술에 대한 자신감을 얻을 수 있는 문제이다. 하지만 평이한 논제이기 때문에 좋은 답안을 내기 위해서 창의적인 사고가 필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심해람 학생의 논술문은 시작 부분의 호기심 유발과 창의적 사고라는 측면에서 좋은 답안이다. 글의 처음 부분은 독자에게 호기심을 생기게 하면서 본문의 내용과 연관성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면에서 스타워즈라는 영화의 한 부분을 인용해 이 문제의 핵심 어휘인 아버지의 의미를 짚어 본 것은 좋은 접근이다. 또 과거와 현대에서 아버지의 역할에 차이가 생기는 원인을 자녀와 사회의 소통 수단의 차이로 본 시각이 돋보인다.
심해람 학생의 논술문에서 보완해야 할 점은 제시문 활용의 미흡과 글 전체의 매끄러운 연관성이다. (가)에서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파악하지 않았고, (나)에서 교육자로서 위엄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아버지의 역할에 활용하지 않았다.
더불어 바람직한 아버지의 역할을 소통으로 제한하지 않고 과거의 경제적, 교육적, 인간적 역할의 긍정적 부분을 함께 언급하고 처음 부분에 제시한 아버지의 의미와 연관지어 마무리했으면 더욱 매끄러운 글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의 아버지의 모습에 대한 평가가 의견 부분에서 이루어졌으면 더욱 좋았겠다.
어떤 일을 잘 하기 위해서는 항상 노력이 필요하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한 번 쓴 글은 좋은 글이 되기 위해 여러 번의 퇴고가 필요하다. 심해람 학생의 논술문도 고쳐 쓰기를 통하여 더욱 좋은 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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