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규식 한남대 프랑스어문학 전공 교수. 문학평론가 |
우선 다소의 오차와 이변은 있었다지만 어느 정도 결과예측이 가능했고 거기에 정치권 혐오와 냉소가 겹쳐 투표율은 실로 처참했다. 무엇보다도 정책, 비전대결이 사라지고 그나마 나열한 공약도 시장이나 군수, 구청장 선거와 차별성이 거의 없었다. 국회의원의 고유한 기능과 역할에 대한 근본적 회의가 높아질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급조정당이 유난히 많았다.
유권자가 전혀 인지 못한 채 전체득표 2%가 되지 않아 해산조치를 받은 군소정당은 제쳐두고라도 제법 의석을 확보한 정당들 역시 선거를 앞두고 부랴부랴 만든 것이다 보니 정당의 이념에서부터 세부규정에 이르기까지 손볼 틈이 없었다. 거기에 올해 유난히 반복, 강조된 국회의원의 위상, 대우, 특권이 시민들에게 각인되면서 엄청난 혜택이 주어지는 국회의원을 뽑으면서 후보자 능력이나 인품, 성실성보다는 공천정당이나 뒤에서 밀어주는 인물만 보고 찍어달라는 희귀한 상황이 벌어졌던 것이다.
민주주의, 대의정치의 여러 구조적인 모순과 잠재적인 병폐가 한꺼번에 두드러졌음에도 이미 선거는 끝났고 299명에게 4년간 국정의 중요부분을 위임해야할 수 밖에 없다면 남은 일은 엄중한 감시와 격려, 공약준수 여부에 대한 매서운 눈길이다. 선거기간중 90도 각도로 숙였던 후보자들의 머리와 허리가 어느 각도 까지 다시 올라갈 것인가도 예리하게 지켜봐야 한다.
운동기간중 더없이 겸허, 공손, 자상, 소탈했던 후보자들이 과연 언제쯤 베일을 벗고 권위와 오만의 본색을 드러낼 것인가도 살펴봐야겠다. 17대 총선 당시 대폭 물갈이가 이루어져 신선한 정치판을 기대했으나 얼마되지 않아 초선의원 역시 그들의 선배가 밟아온 구태의 얼룩진 뒤안길로 총총히 달려가지 않았던가. 더구나 올 선거에서는 참신, 유능하다는 공감대를 얻은 인물들이 대거 낙천, 낙선한 반면 누가 봐도 문제있고 이러저러한 오점으로 점철된 인사들을 해당지역 유권자들이 적합하다고 뽑아준 것을 어찌할까.
현행 선거방식이 최선의 방법이 아님에도 차선, 차악의 방법일 수 밖에 없다면 대안은 한층 높아진 국민들의 정치의식과 비판력으로 4년간 그들의 정치활동과 발언, 법안제출과 투표 내역, 그리고 공약 실천여부 등으로 4년 뒤 심판의 잣대를 삼는 일이다. 청렴하고 성실하게 의정활동을 벌이는 이들에게는 후원회를 통하여 성원을 보내는 동시에 구태의연한 정상배들에게는 국민의 매서운 힘을 보여줌으로써 우리 헌정역사를 통하여 지속된 악습의 고리를 이제는 끊어야할 의무가 주어졌다.
선거운동 기간중 각 가정으로 배달된 선거공보는 후보자의 약력과 소신, 정치관 그리고 지역구에 약속하는 각종 공약으로 가득차 있다. 팽배한 정치불신과 저조했던 이번 총선 참여율로 미루어 볼 때 선거공보를 봉투도 뜯지 않고 그대로 재활용 분리수거로 넘겼거나, 한번 훑어보고 쓰레기통으로 던졌을지도 모르지만 아직 찾을 수 있다면 차분히 다시 읽어보고 당선자가 약속한 공약의 이행여부와 성과를 다음 선거에 반드시 반영할 일이다.
이미 버렸다면 내걸었던 공약만이라도 챙겨보자. 당선자의 선거운동 홈 페이지가 폐쇄되기 전에 서둘러 다운받아 출력해 놓으면 좋겠다. 낙선자중에서도 호감이 가는 인물이 있었다면 그들의 공약도 참조하면서 원외의 어려움속에서도 지역발전을 위하여 얼마나 노력했는지 살펴보고 다음에 일할 기회를 줘야하지 않을까.
“몇번 씩이나 뽑아줬는데 지역구에 해놓은 일이 뭐냐?”고 다그치기에 앞서 공약실천 여부를 평소 관심있게 살펴보지 않았던 주민들에게도 책임이 있다면 우선 지난해 대선과 올 총선 선거공보부터 서둘러 찾아보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