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종서 대전도시개발공사사장 |
출근길에 차창으로 만나는 4월은 눈부심 그 자체다. 목련이 귀족 스런 자태를 뽐내는 옆으로 벚꽃잎과 살구꽃 잎이 봄바람을 타고 있다.
남쪽 끝 제주에서 서울까지 비행기로 한 시간이 채 안 걸리는 좁은 땅이지만 한라산에서 시작한 화신(花信)이 백두대간을 따라 북상하는 동안 삼천리강산은 한 달 가까이나 꽃 잔치가 벌어지니 우리 땅이 그리 좁은 것만도 아닌 듯싶다.
이 때쯤이면 전국의 자치단체마다 자기지역의 아름다운 꽃길을 자랑하기에 바쁘고 신문이나 방송은 개화소식을 알리느라 뉴스까지 꽃 향기가 물씬 풍긴다.
대전시에서도 정생길(사정동 동물원 입구~금동), 회인선(세천동~회인), 추동선(세천동~직동), 대청호길(삼정동~갈전동), 계족산 숲길 등 다섯 곳을 벚꽃 명소로 선정해 홍보에 나서고 있다.
대전이나 다른 지역이나 상춘인파로 북적이며 그 지방의 자랑거리가 된 꽃길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모두 사람의 노력으로 심고 가꾼 길이다. 그것도 한두 해로는 어림도 없고 수십 년간 정성으로 보살핀 다음에야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다.
내가 군대생활을 했던 70년대 초반 진해 해군통제부 안에는 아름드리 벚나무가 가득했고 난생 처음 그런 아름다움을 보게 된 젊은 병사는 새로운 세상을 만난 듯한 감명을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었다. 그 당시 진해의 벚나무 수령이 30~40살이었으니 지금은 70살이 넘었을 게다.
대전 인근의 벚꽃길들이 대부분 70~80년대에 조성을 시작해 30년 이상이 지난 이제야 ‘명소’라는 이름표를 달게 되었으니 나무를 심고 가꾸는 것이 얼마나 오랜 시간과 끈기를 필요로 하는지 설명해 주고 있다.
나무가 주는 환경적 값어치는 전문적 영역이니 논외로 하고 나는 오히려 정서적인 가치에 무게를 두고 싶다. 새싹이 돋고, 꽃이 피고, 잎이 지는 자연계의 순환을 가까이서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우리의 정신건강을 위해 유익하고 또 삶의 질을 개선시키는지는 굳이 따져볼 필요도 없을 것이다.
계획적으로 녹지를 가꾸고 충분한 수목을 심은 도시와 그렇지 못한 도시의 경쟁력은 비교가 무의미하다. 그래서 신도시가 조성될 때마다 조금이라도 녹지비율을 높이기 위해 자치단체와 관계자들은 머리를 맞대고 묘안을 짜낸다.
이런 이유로 대전시에서는 나무심기를 역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우리 공사도 지난해 공급한 서남부 9블록 아파트단지를 나무가 가득 한 도시라는 뜻에서, 문법적으로는 맞건 틀리건, 트리풀시티(treefull city)로 이름 지었다.
외국 도시의 울창한 가로수와 계절을 가리지 않고 만개하는 꽃을 부러워 하지만 정작 우리가 대전의 거리에 나무를 심고 꽃밭을 가꾸는 데는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는지 반성해볼 일이다.
‘나무들은 / 난 그대로가 그냥 집 한 채 / 새들이나 벌레들만이 거기 / 깃들인다고 사람들은 생각하면서 / 까맣게 모른다 자신들이 실은 / 얼마나 나무에 깃들여 사는지를’정현종 시 ‘나무에 깃들여’
시인의 노래처럼 우리는 나무가 얼마나 우리에게 값진 존재인지를 까맣게 모르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공기나 물처럼 항상 우리 곁에 있어 그 소중함을 모르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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