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원준 한국해양연구원 남해연구소 해양환경위해성연구사업단장 |
‘검은재앙`으로 불리던 그 많던 기름은, ‘태안의 기적`으로 칭송받는 많은 자원 봉사자들을 포함한 현지 주민과 방제당국의 노력으로, 이제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기름은 여전히 모래 속과 바위 틈에서 그리고 바다 밑에서 원래 그 곳의 주인 인양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맑은 하늘에 날벼락과 같은 사고를 당한 현지 주민들의 시름은 여전히 깊어만 가고 있다.
하루 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주민과 어민들은 하루 빨리 사고 이전의 청정한 바다를 되찾고 싶은 마음이지만, 그마저도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이번 허베이스피리트호 사고와 같은 대규모 원유 유출사고는 우리가 평소 바다에서 접하는 해양오염과는 달리, 순식간에 일어나 넓은 범위에 영향을 주는 긴급 상황에 해당된다.
다시 말해 긴급한 상황에 대처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기름과 전투를 벌여야 하는 방제분야 뿐만 아니라, 해양오염 및 복원과 관련된 과학기술 분야도 마찬가지다.
사고 이후에 현장에서 발생한 시시비비를 가려줄 객관적인 과학적 증거들이 사전에 마련되어 있었다면, 불신으로 부터 발생하는 시간과 노력을 줄여서 사회적인 간접비용의 낭비를 줄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사실들을 여기에 열거하려면 지면이 부족할 것 같아 한 가지만을 예로 들어 보려 한다.
해상에서 유처리제를 사용해서 바다 밑으로 가라앉은 기름들에 대한 논쟁이다.
외국에서 연구된 일반적인 내용은 알고 있지만, 겨울철에 수온약층이 사라지고 조류가 강한 태안 앞바다에서 분산된 기름이 물 밑에서 최종적으로 어떻게 되었는지는 누구도 모른다. 평소에 연구된 것이 없기 때문에 사고 초기에 현장에서 해상방제와 동시에 모니터링 하지 않으면 추측만 무성해질 뿐이다.
사고 10일 후에 사고해역 앞바다에 조사선을 띄워, 퇴적물 채취기로 조사한 73개의 격자형 정점에서 육안으로 식별되는 기름의 흔적은 없었다. 이 조사를 통해 대규모로 광범위하게 기름이 가라앉았다는 초기예측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같은 조사에서 일부 유류 성분만 표층 해수에서 높게 검출되었을 뿐, 표층 아래의 수층에서 유류성분 농도가 높게 검출되지는 않았다. 단, 영향을 심하게 받은 해안가의 조하대에서는 시간이 지난 이후에 기름의 흔적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최근에 이루어진 현지 어민과 정부의 합동조사에서 사고 해역 일부 지역의 해저에서 국지적으로 기름이 발견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그럼 저층으로 분산된 기름은 희석되어 사라졌는가, 표면적의 증가로 미생물의 분해가 촉진되어 분해되었는가, 충분히 분해되거나 희석되기 전에 조류를 타고 해안가 저층으로 밀려오지는 않았는가, 저층에서 서식하는 생물에 영향을 더 주지는 않았는가, 분산 이후에 시간이 흐르면서 입자에 흡착되어 저층에 가라앉지는 않았는가, 국지적으로 확인된 해저의 기름은 어떻게 침강된 것인가, 저층의 기름은 시간이 흐르면 어떻게 될 것인가 등의 사실들을 과학적인 실험과 관찰을 통해서 밝혀내는 것이 과학기술자의 몫임은 확실하다.
문제는 현 상황과 우리나라 현실이 시간을 두고 답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답은 하나다. 평소에 이런 질문에 답을 줄 수 있는 연구와 조사를 충분히 해서 과학적인 자료를 축적해 놓아야 한다. 또한 관련 분야에 충분한 경험과 노하우를 확보할 수 있는 전문가도 충분히 양성해 놓아야 한다.
시프린스호 유류 유출사고 이후에 유류사고 및 오염과 관련하여 이런 저런 연구들이 일부 진행되었다. 하지만 국민과 정부의 관심이 사라지면서 유류사고와 관련된 연구는 다른 분야와 비교할 때 거의 중단된 상태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정부를 상대로 사전 연구의 필요성을 좀 더 설득하지 못 한 과학기술자의 잘못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그나마 과거에 진행된 연구 결과들이 현재 현장에서 알게 모르게 잘 활용되고 있다.
시간이 기다려 주지 않는 답을 찾기 위하여 많은 과학기술자들이 오늘도 현장에서 실험실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하나라도 더 과학적인 자료를 확보하고, 하나라도 더 객관적인 해석을 내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누군가에게 유리한 결과를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해 주기 위해서다. 설사 지금 원하는 답을 주지는 못하더라도 언젠가 다시 일어날지 모를 사고에는 지금 보다 나은 답을 주기 위해서다. 이것이 과학자가 해야할 역할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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