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일 년 반 동안 소록도 한센병 환자들의 손발이 되어 준 어떤 소녀 이야기도 있다. 광주발 고흥행 시외버스를 타고 녹동 항에 내려서 통통배로 소록도까지 가는데만 꼬박 세 시간이 걸렸다. 여고 3학년인 소녀는 새벽 다섯 시 부터 열두 시간 이상 쉼없이 일했다. 소리없이 소록도에 가서 일하기를 50여 차례, 어린 소녀는 그 흔한 봉사활동 확인서조차 받지 않았다. 소녀도, 소녀와 함께 소록도에 와서 봉사활동을 한 엄마 아빠도 그 이야기를 숨겼다. 소록도에서 일하는 여동구라는 직원이 광주시교육청 홈페이지에 숨겨진 내용을 제보하면서 비로소 세상에 알려졌다.
할머니와 소녀의 소리 없는 이야기는 그러나 ‘소문`이 되어 사람들 사이에 들불처럼 번져 감동의 꽃을 피웠다. 언 발에 쥐 오줌 누듯 한나절 찰나의 봉사활동을 하러 가면서 산더미 같은 보도 자료를 언론사에 뿌리는 사람들의 이벤트 봉사와 격이 다르다. 최근에 발행된 지역 신문들을 한번 펼쳐보라. ‘현장`에 봉사자들이 가기도 전에 언론 매체를 통해 그 소식이 알려지고 조직원들의 ‘현장 봉사`는 카메라에 생생하게 담긴다. 동원된 조직원들의 소위 ‘자발적 봉사`는 조직의 이름으로, 조직을 이끌고 있는 리더의 이름으로 ‘화려한 외출`을 한다. 리더는 한사코 이름 밝히기를 지향하고 매스컴에 얼굴 나기를 결코 거절하지 않는다. 웬걸, 방울소리 요란하게 소리를 마구 질러서 그 소리가 천둥 같은 소문으로 퍼져나가기를 언죽번죽 조부빈다.
주말도 괜찮고 퇴근 후 시간도 가능할 텐데 굳이 평일 정규 직무시간에 직원들을 봉사하러 내보내야 하느냐고, 자원봉사답게 소리없이 조용히 행할 일이지 매스컴에 알릴 필요가 있겠느냐고, 강의를 받아야 할 시간에 학생들을 차에 태워 꼭 현장에 투입해야 하느냐고 물으면 번개처럼 말의 칼이 묻는 자의 입을 벤다. 너희가 섬김과 봉사의 고귀함을 모른단 말이냐, 너희가 한번이라도 봉사의 성스러움을 체험해 보기나 했더냐, 리더가 곧 조직이거늘 조직의 명령에 반하자는 것이냐?
낮추고 감추기보다는 높이고 드러내는 리더들의 봉사는 해바라기 쇼다. 배고파서 칭얼대는 자들의 고통을 톺아보는 대신 허기진 사람들의 무지와 게으름을 탓하는 고명한 리더들의 인식과 무엇이 다른가. 밥이 없으면 피자를 시켜 먹으면 될 것을 멍청하고 한심한지고. 그러니 조직원들이여 멸사봉공하라, 그대들의 안타까운 희생과 동원된 봉사는 리더들의 ‘멸공봉사`를 위한 강력한 동력 장치가 될지니 그 또한 쓰임새가 ‘좋지 아니한가`.
국회의원 선거를 하루 앞뒀다. 두 주일에 걸쳐 전개된 후보자들의 화려한 쇼는 오늘 자정으로 끝난다. 지역과 국가를 위해 봉사하겠다면서 천연덕스럽게 ‘머슴 쇼`를 한 후보들 중에는 당선되자마자 안색을 바꿔 4년을 강퍅한 마름으로 군림할 자가 있을지 모른다. 보름 동안의 출장 쇼를 끝내고 4년 후에 다시 ‘딱 보름 동안만` 눈물 콧물의 ‘머슴 쇼`를 하면 된다는 후보 연기자들을 가려내 기꺼이 버려야 한다. 저잣거리의 뱀 쇼 보다 못한 ‘꾼`들의 쇼에 현혹되지 말자. 거짓 쇼에 속아 그에게 투표하고 네 해를 고통스러워 해서는 안 된다. 비록 선거기간 동안의 쇼에는 능숙치 못했더라도 주빈인 유권자들을 위해 성실하게 의정활동을 할 후보자를 골라야 한다. 앞으로 마흔여덟 번의 보름 달이 뜨는 동안 내내 우리가 ‘갑`이어야 한다. 당선된 자가 4년을 만끽하기보다는 유권자들에게 4년 동안 신명난 쇼를 보여줄 수 있는 후보, 그가 진짜 쇼를 하는 정치 예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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