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진 충남대국문학과 교수·드라마평론가 |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는 선언으로 임금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하기 시작한 정조대왕은 조정의 핵심 세력인 노론 벽파에게는 여전히 위협적인 존재였다. 그래서 임금의 자리에 오른 뒤에도 여전히 암살 위협에 시달려야 했고, 그런 와중에도 남인과 서얼을 등용하는 탕평책을 시행하는 등 여러 가지 개혁 정치를 펼쳤기에 정조대왕의 업적이 더 큰 빛을 발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역사드라마 ‘이산`은 이처럼 파란만장한 정조대왕의 삶을 다루면서 지난 18대 대통령 선거와 새 정부의 출범 과정에서 정치적 논쟁에 휘말리기도 했다. 개혁 군주 정조대왕의 면모가 노무현 전 대통령과 비슷하다 하여 당시 여당에게 유리한 정치 환경을 만들어준다는 비판과 임금의 자리에 오른 정조대왕이 조정의 중요 직책을 구조 조정하겠다는 내용이 방송되자 새 정부의 정부조직 개편에 대한 노골적인 홍보 아니냐는 비판이 대표적인 경우였다.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작가적 상상력이 곁들여진 역사드라마는 근본적으로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시청률이 높은 역사드라마를 둘러싸고 정치적 논쟁이 벌어지는 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정작 문제는 시청률이 높은 역사드라마 ‘이산`의 주요 내용이 끊임없는 음모론에 근거하여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드라마에서 ‘음모론`은 주인공을 위기에 빠뜨리면서 극적 긴장감을 조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음모론에 근거하여 이야기를 구성한다면 극적 긴장감은커녕 오히려 음모론 자체가 짜증스러워질 수 있다. 게다가 역사적 기록을 토대로 창작된 역사드라마에서의 음모론은 시청자의 역사의식을 왜곡시키면서 정치 혐오증을 유발할 여지가 많기 때문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음모론에 입각한 역사드라마의 폐해는 단순한 기우가 아니다. 18대 대통령 선거에 이어 오는 4월 9일 치러질 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유례없이 낮은 투표율을 기록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정치 혐오증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는 다양한 의견이 공존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정치는 다양한 의견들이 충돌하면서 빚어내는 갈등을 조정하고 합리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예술 행위이다. ‘~카더라` 통신이나 ‘음모론`에 근거하여 정치를 희화화하거나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각 후보들의 정책을 꼼꼼히 검토하여 국민의 소중한 권리를 반드시 행사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우리 정치 현실이 조금이라도 개선될 것이다. 유권자의 소중한 한 표가 우리 지역과 대한민국을 발전시킨다는 점을 명심하고 4월 9일 가족과 함께 투표장으로 나가 민주주의를 체험하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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