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억중 건축가/한남대학교 교수 |
여기 창문에 얽힌 한 시인의 애틋한 가족사랑 이야기가 있다. 시인이 퇴근하던 어느 날, 예정된 일정을 재촉하듯 잉크 빛 어두움이 칠흑 같은 둥지를 트느라 여념이 없는 시간, 그녀가 집안에 들어서자 낮은 담장 안쪽 작은 텃밭을 낀 건넌방으로부터 새어나오는 작은 불빛에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그날따라 그 모습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아 불빛을 훔치려는 사람처럼 문이 아닌 창 쪽으로 가서 몰래 카메라를 들이대듯 집안을 샅샅이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큰 아이와 아빠는 티격대격 장기를 두고 있고, 작은 아이는 자고 있는 듯, 접시에 남아 있는 과일은 아직 물기조차 마르지 않았고(아! 아빠의 자상함/책임감이여!), 난로 위에 올려놓은 주전자에서는 김이 오르고 있었다(아! 삶의 안락함/편리함이여!). 불빛으로 넘쳐 나오는 것은 일견 따뜻한 행복과 평화 같은 것일진대, 음, 그래. 하지만, 나 없으면 쩔쩔 맬 줄 알았는데도 집안은 그럭저럭 잘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이르자 순간 그녀는 가슴이 허전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고, 그저 뒤숭숭한 감정을 어찌 할 수 없었다했다.
“나는 한 마리 나방인 듯이/ 창문에 부대껴 서서 생각 한다/ 그 익숙한 살림살이들의 낯섦에 대하여/ 부르면 들릴 만큼 가까운 거리의 아득함에 대하여/ 내가 없는 세상의 온기 또는 평화에 대하여”(나희덕, ‘불 켜진 창`)
그녀가 몇 시에 집에 들어오던 아랑곳 하지 않는 저 창문 안쪽 세계의 가깝고도 먼 아득함이여! 이렇듯 집안에서 고작 나방 같은 신세로 느꼈을 시인의 마음이 얼마나 시리디 시렸을까. 허무하기만한 심정을 달래며 몰래 카메라를 접으려 했던 그녀가 다시 눈을 들어 방안을 들여다보니, 아니, 이럴 수가! 큰 아이가 자꾸 시계를 올려다보는 것이 아닌가. 아니 저 녀석이. 순간 가슴이 뭉클하고, 벌써 뺨에는 한 줄기 눈물이 주르륵 흐르고야 말았을 터. 안 봤어도 비디오가 아닌가. 그래 얘야, 엄마 여기 있단다하고 당장 방안으로 달려 들어가 내 새끼를 껴안아 주고 싶었겠지만, 그날 밤 그녀는 나방처럼 어둠 속에 숨어 오래오래 창문 속을 하염없이 들여다보았단다.
“불 켜진 버스처럼 금방이라도 떠날 것 같은/ 그 창문을”
저 창문 속에 담긴 한 가족사의 내면 풍경! 하찮은 존재로 여기기 쉬운 창문이 뜻밖에도 사람과 사람 사이, 그 끈끈한 인연을 이어주고 있으니..., 창문 하나라도 소중히 다루지 못한다면 어찌 집다운 집을 제대로 그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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