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밖]혜진·예슬법과 제시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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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밖]혜진·예슬법과 제시카법

  • 승인 2008-04-02 00:00
  • 신문게재 2008-04-03 21면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성서 인물 ‘요한’은 미국이나 영국에 가면 ‘존’이 된다. ‘장’은 프랑스, ‘요하네스’는 그 독일명이다. 스칸디나비아에서는 ‘얀’이고 러시아에서는 ‘이반’이다. 발음도 다르지만 선호도나 느낌이 조금씩 상이하다. 요한 바오로 2세에 붙이는 ‘요한’과 삽살개 이름 ‘쫑’이 된 경우는 아주 많이 다를 것이다.


미국에서 죄가 되는 것들. 사진 찍는다고 곰 깨우기(알래스카), 선인장 자르기(애리조나), 대중 앞에서 수영복 입고 노래하기(플로리다), 나체로 잠자기(미네소타), 미혼여성이 혼자 낚시질하기(몬태나), 학교 근처에서 동물 교미시키기(캘리포니아), 경찰에게 인상쓰기(뉴저지) 등. 법조문은 확인할 수 없었지만 어떻든 미국이 법의 나라라는 말은 맞다.

그래서인지 법에도 별명이 많다. 연방 공법 107-110호는 ‘어떤 아이도 뒤처지면 안 된다 법(No Child Left Behind Act)’이 속칭이다. 정식 명칭이 있어도 제안자 이름에 법(Act)만 붙여 부르는 것은 일상화됐다. 금융개혁을 위해 도입한 법이 글라스-스티걸법이다. 노사관계법인 태프트-하틀리법, 전국노동관계법인 와그너법, 국내안전보장법인 매카란법이 모두 그렇다.

강화된 정치자금법을 애칭처럼 우리도 ‘오세훈법’으로 부르기는 했다. 요즘 오세훈 서울시장은 ‘수도권 대기환경에 대한 특별법’을 ‘오세훈법’으로 불러주길 원한다. 일명 ‘혜진·예슬법’을 제정한다고도 한다. 이 경우, 입법 취지에 반대할 이유는 없지만 끔찍한 성폭력 피해자인 어린 영혼들의 이름을 법률명으로 쓰는 것이 우리 문화의식에 맞는가는 의문이다.

‘제시카법’과 ‘메건법’으로 남은 제시카나 메건도 우리의 혜진이와 예슬이처럼 피다가 만 소녀들의 이름이다. 국내에서 도입한 성폭행범 신상 공개는 메건법에 따른 것이고 전자팔찌(사진)는 제시카법을 좇은 것이다. 도로 전광판에 실종아동을 알리는 앰버 경보 역시 아홉 살 소녀 앰버 해거먼의 이름에서 나왔고 국내서도 이 제도를 최근 도입했다.

법과 제도에 있어 미국을 따라잡으려면 흉내낼 것들이 그러고도 상당히 많이 남았다. 텍사스에서 성범죄자의 집과 자동차에 성범죄자이니 조심하라는 경고판을 부착하는 것, 캘리포니아에서 아동 성학대자에게 성욕 억제 약물주사나 거세 중 택일하도록 하는 것도 그것이다. 논란 아닌 논란이 된, 피해자 이름을 딴 법률도 그중 한가지다.

그들이라고 인격권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혜진·예슬 이름이 남으면 아동보호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 홍보효과는 극대화할지 또 모른다. 하지만 법은 강화하면서 가엾고 가여운 두 이름표를 법전 아닌 우리 가슴에 뼈아프게 새겨놓는 쪽이 더 좋겠다. 성(性)금수들을 엄중히 다스려 완벽하게 보호하겠다는 의지가 식지 않으면 된다. 플로리다의 제시카 런스포드와 안양의 혜진·예슬은 같으면서 같지 않을 수 있다. 안과 밖은 늘 차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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