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요한 목원대 총장 |
교수가 아닌 경영인으로서의 대학 문화에 적응하려 애썼고, 대전이라는 지역과 대학이라는 조직문화에 적응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급기야 병을 얻었고 이 병원 저 병원 전전긍긍하기를 수주일. 그렇게 1년을 보내고서야 약간의 여유를 찾았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봤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나의 아버지 또한 목사셨다. 해방 이듬해 서울에서 태어난 나는 한국전쟁이 끝난 후 가족과 함께 공주로 이사 왔다. 참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목회자이신 아버지는 농사를 넉넉히 짓는 것도 아니요, 교회 또한 신도가 많은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항상 배가 고팠다. 나를 더 배고프게 하는 것은 학교가 끝나면 항상 기다리고 있는 노동일 이었다. 그것도 내 배를 불리는 우리집 농사일도 아닌 동네일을 도와주는 일이었다.
그리고 주말이면 배고픈 이들은 전부 우리집으로 오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를 배고프게 만들고 짜증나게 만들던 우리가족의 노력봉사는 어느덧 일상이 되어 몇 해가 흘렀고 주말이면 우리집을 찾는 배고픈 이들은 더욱 늘어났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봉사는 서울에서 10년간의 대학생활과 이후 10년간의 미국생활에서의 대학공부와 목회활동 뿐만아니라 지난 2006년 대전으로 오기 전 20년 동안 계속됐다. 봉사활동은 어린시절부터 지금껏 일상의 연속이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그 일상은 내 삶의 철학이 됐고, 위대산 유산이 됐다.
힘들기만 했던 이곳 생활이 1년이 지나 익숙해져 가는 어느 날, 그 동안 인식하지 못했던 나의 일상은 멈추어졌음을 문득 깨달았다. 동시에 총장에 입후보하며 내걸었던 스스로의 철학이자 부모에게 물려받은 위대한 유산이라 자부했던 일을 잠시 망각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사회가 요구하는 참 인재를 양성하는 대학은 전문지식과 기술을 가르치는 지식교육, 인간사랑의 정신을 기르는 인성교육, 지식과 사랑을 실천에 옮기는 봉사교육이 적절히 어우러져야 한다. 그럼에도 대학들은 지식교육에 의한 지성인을 양성하는 데 주력해왔음은 부인할 수 없다. 만약 대학이 지식교육을 중시하는 교육노선만을 고집한다면 사회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할 것이다. 그래서 난 사회복지학과 교수들의 도움을 받아 본격적으로 봉사 실천운동에 돌입했다. 지난해 5월 총장직속으로 사회봉사지원센터를 설립하고 대학의 모든 구성원이 사회봉사에 참여하도록 매년 추수감사절과 부활절을 사회봉사주간으로 선포했다. 바로 이번 주가 선포식 이후 두 번째 봉사활동을 펼치는 주간이다.
1주일간 5000여명의 학생과 교직원들은 각 분야에서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치게 된다. 봉사주간 첫 날부터 아침 일찍 100여명의 학생들은 태안지역 기름방제작업을 떠났고, 일부는 아동센터와 양로원을 찾았다. 나 역시 발대식이 끝나자마자 학생들과 함께 노인요양원을 찾아 어르신 생일잔치에 참여해 일손을 거들었다.
학생들을 격려하기 위해 유성의 한 노인복지관을 찾았을 때는 건물뒤편에서 예닐곱명의 학생들과 교수 한 분이 땀으로 범벅한 얼굴로 밭을 일구고 있었다. 순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항상 남을 도우며 살아야 한다는 나의 철학을 저 학생들은 어떻게 받아줄 지 걱정도 됐지만, 땀의 소중한 가치를 깨닫게 하는 것이 총장으로서의 의무라 다시 한 번 다짐했다. 이번 봉사활동이 그동안 등한시해왔던 대학의 사회봉사 기능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교수들로 하여금 지식인의 사회적 책임을 깨닫게 해 주기를, 학생들로 하여금 지식의 현장적응력을 길러 주며 나눔과 섬김에 인색했던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주길 간절히 바란다. 우리의 작은 나눔과 섬김이 공동체 사회를 만들어가는 초석이 되길 바라며 세상을 미소짓게 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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