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선필 목원대 행정학과 교수. 대전환경운동연합 집행위원 |
이번 17대 총선에서 이렇게 낮은 투표율을 염려할 수밖에 없는 것은 총선정국에 특별히 부각되는 이슈도 별로 없고, 정당도 이합집산을 하는 과정에서 정체성에 대해 혼란스럽기 그지없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보니 정책조차도 실종되고 유일하게 인물중심의 선거로 가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이러한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선거관리위원회는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서 투표율 올리기에 나서고 있다고 한다. 특히 투표율이 낮은 젊은세대를 자극하기 위해 여성그룹 ‘원더걸스’를 홍보대사로 삼아 투표홍보 영상을 내보내고 또 UCC 공모전을 통해 네티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아울러 ‘투표 인센티브제’를 통해 국공립시설과 미술관, 국립공원의 이용료를 면제해 주는 방안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관위의 노력이 애처롭게 느껴질 정도로 유권자들의 무관심이 극에 이르게 한 일차적 책임은 누가 뭐래도 정치권 전체에 있다고 생각한다. 국민을 대표하는 공당으로서 그리고 국민의 대표로서 국민들에게 아무런 희망과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못한 정도가 아니라 정치에 대해 생각하는 것조차 염증까지 느낄 정도로 정치가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이 제머리 못 깎듯이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정치권을 그냥 내버려두는 유권자들은 부조리한 정치권의 악순환을 지속시키는 스스로의 책임을 망각한 행위라 생각한다. ‘나는 찍어주고 싶은 후보가 한사람도 없기 때문에 투표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고 항변할지도 모르겠다. 그 마음은 십분 이해한다. 그렇지만 투표만은 포기해서 안된다고 말하고 싶다. 투표라는 정치적 의사표현의 장에서 기권은 잘못 표시해서 계산되지 않는 무효표보다도 의미 없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차라리 정말 찍을 사람이 없다면 투표용지에 찍을 사람이 없다고 써넣기라도 하면 투표한 숫자에 세아려지기라도 하지만 기권하면 그 유권자의 권리는 그냥 공중으로 증발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찍을 사람이 없다”라고 써넣은 유권자들이 천 명이 나오고 만 명이 나오면 정치권은 무효표가 된 그 목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게 되고 결국은 바뀔 것이다. 그러나 그 열배가 되는 천 만명 유권자의 기권은 절대로 아무런 변화를 끌어내지 못할 것이다.
유권자 여러분 제발 투표하시라. 후보자 중에서 최선의 후보를 못 찾으면 차선에라도 붓두껍을 눌러주시기 부탁드린다. 그래도 속이 안차시면 투표용지에 “찍을 사람이 없다”고 써넣으시라. 그러면 언젠가는 그 뒤틀린 속을 풀어줄 정치가 될 것이다. 더군다나 이번 선거에서는 지역구도 있지만 비례대표도 있어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의 의사표현 기회가 있으니 이 두 번의 기회를 즐겁게 사용하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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