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숙 부여 석성중 교사 |
“집에 가기 전에 노트 가지고 선생님한테 와. ○구야! “그랬기에 교무실에 앉아서 계단을 바라보며 기다려 본다. 그런데 그 아이는 교무실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휑하니 가 버린다. 따라가서 불러올까 잠시 생각하다가 또 다음 기회를 보기로 한다.
작년에 전학 온 ○구는 2학년이 되었건만 영어단어는 커녕 아직 알파벳도 제대로 읽고 쓸 줄 모른다. 책이나 노트도 가지고 다니지 않기에 며-칠을 두고 구슬린 끝에 가지고 오기는 했는데 책상 밑에 두고 다닌다. 시간 마다 꺼내 놓으라고 닦달할 때까지 딴 짓이다. 마지못해 꺼내 놓고는 또 엉뚱한 짓이다. 알파벳을 써주고 연습하라고 했더니 왜 이런 것을 시키냐는 듯 입이 댓발이다.
모르니 재미없고 재미없으니 따분해서 엉뚱한 짓이다. 그러니 주변 아이들도 산만해 진다. 쓰기는 그만두고 단어 따라 하기라도 시키려면 발음이 안 된다고 온 몸을 비비꼬며 설레발이다. 모르쇠로 두자니 아이들이 은연중에 배울 것이 염려스럽다. 게으른 아이는 내버려 둔다는 메시지를 다른 아이들에게 주면 어쩌나 싶어서 사이사이 관심을 주어본다. 함께 살아가는 것을 가르치고 배워야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인수위원회 부터 현정부 출범 한달이 된 지금까지 불과 두어 달 동안에 영어교육과 관련하여 무수히 많은 갑론을박이 있어왔다. 그러는 사이 몰입교육은 주1회 티이이(TEE:영어를 영어로 가르치기)로 후퇴하였다. TEE는 88올림픽이 예정된 이후 줄곧 강조되어 온 사안이다. 그간 영어교사들은 부단히 자신의 능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면서 외국어로서의 영어(EFL)를 각자의 능력에 따라 현장에 맞게 열심히 가르쳐 오고 있다. 영어교육의 변화를 시도하고자 한다면 누구보다도 먼저 영어교사들에게 물어야 한다.
학교는 교육의 보편성을 추구해야하고 ‘누구도 교육의 수혜에서 제외되어서는 안된다(No child left behind)’는 이상도 실현해야 하기에, 모든 학생의 전반적인 학력 신장과 함께 학생들을 위한 보충학습에 주력하는 편이다. 특히 초`중학교의 사정이 그러하다.
따라서 수월성 교육의 중요성을 모르거나 방기해서가 아니라 시간과 에너지에 제한이 있는 정규 교육과정에서 영어 학력이 우수하거나 학력을 남달리 높이고 싶어 하는 학생들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 부족한 것도 현실이다. 그러나 우수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방과후 및 주말, 방학중 영어캠프가 운영되고 있고 외국어고등학교와 같은 별도 교육기관도 있다. 이런 터에 모든 학교 영어교육이 부실하다고 한다면, 이는 몰이해의 소치가 아닐까?
내일도 ○구네 반에 영어 수업이 있다. 내일은 ○구네 반 애들이 내 수업 시간에 조금만 더 눈을 빛내주면 더 없이 행복하겠다. 나는 ○구가 나를 조금만 좋아해주었으면 좋겠다. 이제 ○구만을 위한 개별학습지를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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