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밖]커피만 ‘셀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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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밖]커피만 ‘셀프…’입니다

  • 승인 2008-03-27 00:00
  • 신문게재 2008-03-28 21면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어떻게 하다니? 나는 한국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5000명이 앉을 자리 위에도 차양을 치든지, 아니면 수상(총리) 자리의 차양을 없애든지 하세요. 수상만 그늘에 있을 수는 없습니다.”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 비서실장의 말에)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이명박 『신화는 없다』 224쪽)


물은 영어로 ‘셀프’, 커피도 영어로 ‘셀프’, 화장실은 영어로 ‘노크’. 아침이면 떠오르는 ‘조크’다. ‘셀프’라는 말이 요즘 귀에 매달려 있는 것은 대통령이 직접 타서 마시는 자급식(自給式) 커피의 영향이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이 “아침에 차 마시는 것만 사진에 나오니…” 하고 농담할 정도로 자주 나온다.

자신이 부자임을 과시하는 최고의 방법이 있다. 눈 하나 깜짝 않고 돈을 펑펑 쓰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고가품과 고급 자동차로 따돌려도 상것들 엄두를 내려는 것은 아랫것들의 속성이다. 사치재로는 위아래 분간이 희미해질 때의 대안은 아끼는 것, 검소함이다. 소비할 재력 있는 사람이 소비하지 않으면 반사회적이다. 모든 것을 감수하면서, 밑에서 고급 레스토랑에 가면 서민풍의 식사를 하고 새파란 직원이 밟고 가는 못을 아까운 듯 묵묵히 줍는다.

역발상의 격식 파괴가 성공하면 그때부터 검소와 노동은 사치보다 사치스러운 사치재로 일순 돌변한다. 의전(儀典)과 한참 동떨어진 대통령의 손수 커피는 ‘커피의 본능은 유혹’이니 씨부렁거리며 홀짝이는 커피보다 호사스럽다. 언제까지 그럴 심산인지, 원래 자급식 커피를 마셨는지, 온 세계를 누비며 익힌 국제 매너인지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다.

다만 유감은 대통령 커피잔에서 탈(脫)권위라든지 실용의 진정성이 아닌 앞에서 끌면 따르라는 CEO의 그림자를 발견한다는 점이다. 현장행정을 강조하며 궁남지에서 군청 간부회의를 하는 것,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그러나 대통령이 직접 커피를 타니까 장관이 따라 하는 모습은 보이기 위한 쇼로 비칠 수 있다. 직분, 직격에 어울리는 처신이 자연스럽다.

오히려 차별화 욕구를 표출하면 할수록 대통령은 ‘대통령스러움’에서 멀어질 수 있다. 청와대에서 칼국수 먹던 김영삼 정권 시절에 IMF 경제대란을 맞았다. 와이셔츠 입고 원탁에서 회의하던 노태우 전 대통령은 위기관리능력이 바닥나 ‘물태우’ 별명만 얻었다. 한 달 남짓, 이명박 경제의 성적표도 좋지는 않다. 7080식 올드패션에 커피만 최신식 셀프서비스 같아 어색하다.

선명하게 자신을 구별할 목적으로 일부러 내핍을 견디는 부유층 같은 억지 품위를 유지할 필요도 이유도 없는 자리, 대통령직이다. 셀프서비스이냐 풀서비스냐는 사소한 것이고 이를 시비하는 것도 하찮다. 하찮기 짝이 없음에도 지면에 올리는 것은 이러다 셀프서비스가 정말 고가의 대통령 위세상품이 되지 않을지, 미리 염려해서다. ‘떡은 떡집에 맡기라’는 말은 전문성의 강조이면서 에너지를 보다 유용한 곳에 쓰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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