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의 원제가 'No country for old men'인데 이 말은 예이츠의 시 ‘비잔티움으로의 항해(Sailing to Byzantium)`의 첫 구절(That is no country for old men.)을 인용한 것이다. 그러나 작품을 읽어 보면 단순히 구절만 인용한 것이 아니라 작품 자체가 아예 예이츠의 시에서 모티프를 취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거칠고 황량한 느낌의 이 작품이 ‘서정적`이라는 의외의 평가를 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스릴러 속에 살아 있는 문학적 울림, 이 작품의 매력은 끝이 없다. 그리고 진정한 의미를 알고 싶다면 먼저 이 소설의 내용을 조금은 이해해야 이해가 쉽다.
사막에서 영양을 쫓던 평범한 사나이 모스는 우연히 유혈이 낭자한 총격전의 현장을 발견한다. 참혹한 시체들, 다량의 마약, 200만 달러가 넘는 현금, 그리고 물을 찾는 중상의 생존자. 모스는 돈가방만 챙겨 그곳을 떠난다. 하지만 생존자를 외면한 것이 마음에 남았던 모스는 그날 밤 물병을 가지고 다시 현장을 찾아간다. 그러나 마약은 사라지고 생존자는 누군가의 총격으로 살해되었으며, 그를 기다리는 것은 미지의 추적자들이다. 이제 지극히 평범했던 모스의 삶은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그는 도망과 총격전, 음모와 살인 속으로 던져진다.
마약 혹은 돈과 연관된 무리들과의, 혹은 그 무리들 간의 총격전과 살인, 나름의 논리로 아주 냉철하게 살인을 일삼으며 거리를 좁혀 오는 살인마 시거, 진심으로 모스를 염려하지만 이 지옥 속에서 모스를 구해 내기엔 너무나 무기력한 보안관 벨. 결국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사라지며, 누군가는 조용히 물러난다.
이 소설을 휘감고 있는 분위기는 묵시록적이다. 스릴러의 외관을 취하고 있는데도 단순한 스릴러가 아니라는 느낌은 거기서 나온다. 소설 첫머리부터 피비린내 나는 살인이 벌어지고 마지막까지 살인 행각이 이어지며 피 냄새가 가시지 않지만, 평범한 스릴러에서 느낄 수 없는 텁텁한 긴장감이 전편에 서려 있다.
그 긴장감은 쫓기는 자와 쫓는 자의 생사를 건 대결에서만 나오지는 않는다.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맞히는 추리적 요소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우리는 범인이 누구인지 처음부터 알고 있다).
독자가 한 장면에 대해 두 번 생각하기도 전에 다음 장면이 연거푸 이어지고 마치 꽉 짜인 일정표에 따르듯 이야기는 파국을 향해 가차 없이 치닫는다. 어느 순간 인물의 행동이나 플롯의 전개가 의아스럽다가도 다음 순간 그것은 무형의 힘이 가하는 필연의 소산이었음을 불현듯 깨닫는다. 그러므로 소설 전체에 의연히 흐르고 있는 것은 어떤 묵시록적 필연성이다. 독자는 모스가 돈가방을 집어 드는 순간부터 그가 이미 죽은 목숨이라는 것을 직감한다. 모스 자신도 어렴풋이 느꼈듯이. 그리고 그 필연성에 대한 예감은 문명 자체에 대한 예감으로 번진다. 소설 전편에 서린 서스펜스는 소설 안에서 바깥세상으로 퍼져나간다.
이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등장인물들의 특징을 파악해야 한다.
- 모스
모스는 죽어버린 마약밀매단들의 돈 2백만 달러를 착복하면서 이야기의 중심을 형성하게 되는 인물이다.
지극히 현실적이며 세상에 대한 어떠한 의문을 지니지 않으며 승부의식이 강하고 어렵게 살아온 인생을 상징하듯이 트레일러에서 거주하며 우직하고 말없고 거칠다.
그러나 그의 자부심과 승부의식은 욕망에 기초하기 때문에 스토리가 진행될수록 그가 처음부터 이길 수 없는 게임에 뛰어들었음을 보안관이나 등장인물을 통해 암시된다. 고생하고 역전의 희망을 품고 몸부림치지만 결국 허무하게 죽는다. 소시민의 욕망을 상징한다.
- 시거
시거는 2백만 달러의 가방을 찾는 살인마로 등장하는데 실제로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거의 모든 것이 투영된 캐릭터이다.
모스와는 달리 시거는 "철학"이 있다.
철학의 정체는 그의 대사처럼 인간은 그저 동전과 같은 운명이라는 것이다.
동전은 생겨나고 어디론가 흘러가고 또 사라진다. 인간은 우연하게 나왔고 우연하게 사라진다는 결정론적인 "우연성"의 화신이다.
결국 안톤은 그 자신이 우연성 그 자체가 되어버린 것이고 그는 그냥 차를 운전하거나 기름을 빌려준 사람, 옆에 있는 사람 등을 아무런 이유 없이 살해한다.
- 벨
보안관인 벨은 무엇을 해야 하고 말아야 하는 것은 이미 정통한 경험 많은 노인이다. 노련하고 현명하여 계속되는 살인극을 벌이는 범인이 단순한 미치광이가 아님을 알아챈다.
자신의 아버지도 보안관이었는데 그때는 총을 가지고 다니지 않을만한 세상이었다고 믿거나 말거나를 말하는 그는 혼란에 빠져있다.
이 소설은 바로 현대인들의 비겁함. 이런 점을 비꼰 소설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답은 없다는 것이고 답은 결정된 것을 의미하는데 결정은 믿음이다. 어떤 믿음이 아닌 진리를 찾아나가는 진행형으로서 인간은 존재한다는 의미다. /권은남 기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