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혜련 대전평화여성회 사무국장 |
평소에 나 스스로 이해심 많고 남의 말 잘 듣는 사람이라고 은근히 자부해왔건만 ‘의사소통훈련’에 임하면서 그것이 완전 착각이었음을 알 수 있었고 아이들에게도 얼마나 소통이 안 되는 엄마였는가를 뉘우치는 계기가 되었다. 짜증내는 아이에게 전 같으면 맞서서 함께 짜증내던 내가 ‘아, 네가 이러 이러해서 기분이 안좋구나!’했더니 아이의 눈빛이 갑자기 달라지면서 조근 조근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또 ‘비폭력 대화’를 접하면서 그동안 타인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었던 나의 생각 없는 말과 행동들이 떠올라 말 한마디에도 조심스러워지기도 한다. 우리가 대화중에 흔히 ‘그 사람은 너무 이기적이야!’ 또는 ‘어찌 그리 소심할까!’ 하면서 매일같이 남을 판단하고 낙인찍어버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했던 말들이 사실은 얼마나 폭력적인 것이었나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 가급적이면 같은 표현이라도 ‘그는 세 번이나 마음대로 약속을 여겼어’나 ‘그 친구는 저번에도 고민만 하다가 그 일을 못했어’ 처럼 평가가 들어가지 않은 ‘관찰’의 입장으로 생각하고 말하려고 노력한다.
우리들 대부분은 상대의 말에 ‘공감’을 하고자 하면서, 상대방을 안심시키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끼며 자신의 견해나 느낌을 설명하려드는데 진정한 공감은 모든 관심을 상대가 말하는 그 자체에 두는 것이며 그에게 자신을 충분히 표현하고 이해받았다고 느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주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불자는 아니지만 불교의 표현을 빌자면 ‘무언가를 하려고만 하지 말고 그냥 그곳에 있어라’는 뜻이다.
물론 이러한 방법들을 일상 속에서 실천하기란 쉽지 않으며 많은 인내를 필요로 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노력들이 하나 둘 모여질 때 점점 심각해져가는 가족 간의 갈등, 각 사회 조직구성원 간의 갈등, 더 나아가 한 나라의 정치권`국가간의 갈등들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의사소통, 비폭력대화의 방법들을 통한 ‘갈등해결교육’은 요즈음 평화훈련의 주요부분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고 전문기관이 실제로 사회 조직들에 개입해 갈등을 중재`해결하는 사례들도 늘고 있다.
우리는 누구나 물질적으로는 풍요롭게 정신적으로는 평화롭게 살기를 원한다. 양자가 다 갖춰진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만 그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며 우리 사회가그 둘을 조화롭게 누리도록 배려하지도 않는다. 그래서인지 평화는 이상적이고 추상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때로는 물질과 비교되어 차선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보자.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남부러울 것이 없어 보이던 사람도 어느날 갑자기 자신의 평화를 잃고 자살을 하기도 하고 세계경제는 점차 풍요로워지고 있는데 인류는 오히려 반평화 ` 비인간화되고 있지 않은가. 아무리 우리 모두가 물질만능주의를 쫓는현실이지만 그것이 정신의 풍요를 동반하지는 않으며 평화를 위한 노력은 그래서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결국 ‘평화’는 추상이 아닌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기위한 절실한 ‘생명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